박정희 정권시절 이런 일이 있었다. 유명 영화인들을 모아 새마을 운동을 PR하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는데 이들을 돈주고 출연시키기에는 너무나 엄청나고 강제로 출연시키자니 공보부장관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때 중앙정보부장인 김형욱이 "나한테 맡기라"면서 문제 해결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는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영화배우 20명을 서울 필동에 있는 코리아하우스로 만찬 초대했다. 말이 초대지 내용은 몇일 몇시까지 출두하라는 통보서였다. 김지미, 엄앵란, 조미령, 김승호, 최무룡, 김희갑 등 일류급 배우 20명을 한국에서 한자리에 모이게 한다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촬영 스케줄과 TV 방송국 출연시간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 말이라고 거역할 것인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20명 전원이 코리아하우스에 모였다. 그나마 코미디언 김희갑씨가 30분 늦었는데 인천에서 촬영 도중 오는데 차 사고로 길이 막혀 조금 늦겠다고 전화가 미리 왔을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만든 영화가 잘 살아 보세의 ‘팔도강산’이다.
박정희 독재가 오래 계속되자 이번에는 청와대 경호실장이 실력자로 등장했고 간이 나쁜 대통령에게 어느 장관이 술을 강제로 권하다가 뒷방으로 불려나가 박종규에게 따귀 맞은 사건까지 있었다. 내가 목격한 어이없는 일 중에 경호실과 경찰 간부의 파워게임을 비교할 수 있는 해프닝이 있었다.
김포 고속도로 위에 전투기 비상 착륙로를 만들었다 하여 그 시범식에 박대통령이 참석했었다. 기자석 옆에 경찰총경 2명이 서있었다. 그런데 청와대 경호실의 젊은 친구가 총경에게 다가가더니 대뜸 반말로 "당신들 뭐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총경 중 한 명이 당황해 하면서 "저희들은 영등포 경찰서장과 김포경찰서장 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젊은 경호원은 "필요 없어, 단하로 내려가 있어!"라고 거만하게 말하니까 총경들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졌다. 아버지뻘 되는 사람한테 반말하는 것하며 경호원의 그 거만은 보기에도 역겨울 정도였다.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가 박대통령을 시해하자 정보부는 하루아침에 날개도 없이 추락해버렸고 차지철 때문에 경호실도 힘이 빠져 버렸다. 12.12사태가 나자 군인세상으로 변했고 보안사령관이 실세로 등장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모두 보안사령관 출신이다. 보안사가 얼마나 막강한 힘을 휘둘렀는지는 우리가 모두 목격한 사실이라 더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지금은 누가 힘을 휘두르고 있는가. 사람들은 보안사령관이 누군지도 모르고 경호실장 이름도 알지 못한다. 안기부도 겉으로 나타나기 싫어한다. 지금은 바야흐로 검찰시대다. 검사의 파워가 대단하다. 야당이 검사 누구누구를 바꾸라고 아우성칠 정도고 법무장관을 불신임하느니 뭐니 하면서 온 나라가 들썩들썩 한다. 김태정, 신숭남 등 검찰총장들이 정계에 지진을 일으키고는 했었다.
검사들이 막강해졌다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부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죄지은 사람이 드물다면 검사가 힘을 쓸 리가 없다. 한국의 공무원, 회사중역 대부분이 봉급상으로는 계산이 안 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 300만원 월급쟁이가 아이들 과외공부에 200만원을 쓰고 있으니 굶으면서 교육시킨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한국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이고 기형적인가는 두 국무총리 인준청문회에서 드러난 대로다.
그 시대에 누가 힘을 쓰는가를 보면 시대의 성격을 알 수 있다. 50년대의 경찰과 부정선거, 60년대의 중앙정보부와 민주탄압, 70년대의 경호실과 권력알력, 80년대의 보안사와 군인문화, 90년대의 검찰과 사회부패는 권력과 사회의 함수관계 변화를 말해주고 있다. 한국의 오늘을 이름짓는다면 ‘부패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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