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때부터 배운 양복재단기술, 43년이 지난 지금도 유일한 저의 본업입니다"
한국의 50년대 말, 6.25사변으로 공부하기도 힘들고 기술도 배우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15세였던 김 용(58)씨는 동네어른에게 어렵사리 양복재단기술을 배웠고 그 양복재단기술 하나로 서울로 상경해 건국대학교 앞에다 양복점을 차리기도 했다.
1988년, 가족을 데리고 하와이로 이민을 온 후에도 김용씨는 호놀룰루에 다시 양복점을 개업하고 현재 43년째 양복재단을 천직으로 알고 외길을 걸어 오고 있다.
더운 하와이에서 누가 양복을 맞혀 입을까?만은 오히려 동양인이 많이 거주하는 하와이에서 양복재단이야 말로 유망업종이었다고.
시중에 나와 있는 양복들은 서양인에 맞게 나오다 보니 팔이 길거나 품이 큰 경우가 대부분, 따라서 동양인 몸에 꼭 맞는 양복을 입기 위해선 전문양복점에서 맞추어 입어야 했다. 김용씨에 따르면 결혼식이나 환갑잔치 때 주로 한국사람과 일본인들이 양복을 많이 맞추어 입는다고 한다.
양복 한 벌 만드는데 3일이 꼬박 걸린다는 그는 "경기가 한참 좋을 때는 한 달에 50-60벌의 양복을 재단해서 쉴 틈 없이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양복이 기성복에 눌려 그때의 1/3수준으로 손님이 뚝 떨어졌지만 그는 양복점 간판을 내릴 마음이 전혀 없다. 현재, 그는 양복점에다 커튼제작까지 동시에 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한때 서울에서 회현동과 명동을 오가며 일류양복재단기술을 배웠다는 김용씨, 갓 이민 온 당시 영어도 못하고 단골손님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그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쌓아 올라가야만 했다. 비록 한국에 있을 때는 직원도 여러 명 두고 할 정도로 제법 큰 양복점 주인이었는데 하와이에서는 부인과 둘이 재단에서 재봉까지 밤낮으로 손수 해야만 했다고 한다.
힘들어도 손에서 양복재단을 놓지 않았던 그는 "이제는 하향길에 접어든 양복점이지만 저는 끝까지 이일을 할 것"이라며 43년 외길인생의 의미를 되새겼다.
<김현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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