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라는 영화를 통해서 1975년에서 1979년 사이에 크메르루즈에 의해 캄보디아에서 자행된 잔혹한 대학살의 참상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불과 4년의 짧은 기간에 일 천만의 인구 중 오 분의 일에 해당하는 이 백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
모든 지식인에 대한 병적인 증오심을 같고 있던 폴 포트(Pol Pot)정권에 의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잔인하게 살해당했으니 일테면 안경을 꼈다는 것이 죽어야 할 이유였다. 손이 곱고 굳은살이 박히지 않은 사람도 끌려가서 죽어야 했다. 이 같은 극단적인 잔혹함의 흔적을 담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프놈펜 남쪽에 위치한 톨 슬랭 (Tuol Sleng) 박물관이다. 길이 600미터 폭 400미터의 담장에 둘러싸인 이곳은 원래 고등학교 건물로 쓰여졌지만 1976년에 크메르루즈에 의해 감옥과 고문실로 바뀐 이래 수 천명의 사람들이 고문당하고 죽은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누구든지 이곳에서는 인간이 죄인 일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쇠사슬에 굴비처럼 엮여서 수감된 감옥의 모습과 생 손톱을 집게로 뽑아버리는 고문이나 심지어는 여자들의 유두를 렌치로 잘라내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치를 떨게 한다.
내게 있어서 잊혀지지 않는 충격은 희생자들의 얼굴사진이다. 모든 수감되어 죽은 사람들의 얼굴사진이 고문실 벽에 죽 걸려있는데 수 백, 수천의 그 사진들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주목해 보면서 나중에는 거의 실신할 뻔했다. 분노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더 이상 공포도 아닌, 절망 외에는 인간의 모든 감정이 배제된, 수천의 눈동자들을 하나씩 대면하는 것은 아무리 용기를 가져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희생자들의 사진 밑에 나란히 붙어있는 가해자들의 사진이다. 크메르 공산당에게 차출 당해 그토록 끔찍하게 사람을 고문하고 죽인 일에 사용된 사람들은 놀랍게도 열 살에서 열 다섯에 이르는 어린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의 얼굴이 그들이 죽인 희생자들의 얼굴 밑에서 천진하게 웃고 있다. 나라가 다른 것도 아니었고 종족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같은 나라
같은 식구들이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죽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토록 참혹하고 잔인하게 말이다. 원래부터 아랫줄의 사람들은 윗줄의 사람들 보다 더 악했을까?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이 두 그룹을 갈라놓은 것일까? 만약 두 그룹의 환경이 달라졌다면 윗 줄에 있는 사람들이 가해자가 되어 아랫줄에 있게되지는 않았을까? 모든 인간은 다 죄성을 가지고 있는데 상황이 그 죄성을 자극하면 누구든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구나. 그래서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죄인이구나. 이것이 거의 실신상태가 되어서 그 고문박물관을 빠져나오던 나의 뇌리를 붙잡고 늘어지던 생각이었다.
1982년 부산의 미국 문화원에 일단의 대학생들이 뛰어들어 신나를 뿌리고 불을 지른 다음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유인물을 뿌리는 사건이 있었다. 이 때 문화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던 동아대학생 장 덕술군은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하여 죽었다. 80년대 반미 민주화운동의 선구적 사건으로 평가받았던 소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의 주역이었던 문 부식씨가 최근에 한국의 어떤 언론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6년 9개월만에 석방된 그는 일종의 영웅이 되어 있었고 어디를 가나 민주인사로 환영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건이후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과연 최선의 행동이었는가?’ 라고 끊임없이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이 폭력을 수반하거나 폭력을 유발하는 것이었을 때 그것을 비판
하거나 지적하는 목소리가 의외로 적었던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이제 40을 훌쩍 넘긴 중년의 그는 말한다. "우리 안의 폭력을 제대로 성찰할 때만이 국가 폭력을 제대로 성찰 할 수 있다. .... 자기 정당성이 어느 집단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 집단 속에서 폭력은 옹호되거나 합리화되기 쉽다. 자신들은 오류가 없다고 믿고 싶은 욕구가 강할 때 폭력은 성찰될 기회를 잃는다."
자신들을 거대한 폭력의 희생자로 간주하고 그 부당한 폭력에 대해서 유일하고 절박한 자기표현과 대항수단으로써 폭력을 정당화하면서 자기 속의 폭력성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금기로 여겼던 민주화세력들 가운데는 문 부식씨의 발언이 용납할 수 없는 변절과 배반과 공격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당한 자들의 고통과 눈물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캄보디아의 톨 슬랭 박물관 방문 며칠 후에 나는 광주의 민주화 묘역을 찾았다. 그곳에서 희생자들의 묘비에 새겨진 기막힌 사연들을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과 아픔으로 하나씩 하나씩 만나면서 한나절을 보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독선적 이분법으로는 아무 것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정직하고 용기 있는 지성인의 성숙한 자기성찰에서 독선적 집단주의의 반목과 대립을 종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는 것 같아서 감사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피해자이자 또한 잠재적인 가해자
이다. 자기 속의 죄성을 보지 못한다면 개인구원도 사회구원도 먼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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