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문흥택(워싱턴 한인 연합회장)
▲주영진(워싱턴 한인 축구협회장)
▲이건우(메시야 장로교회 목사)
▲경 듀갠(훼어팩스 카운티 교육청 근무)
때: 2002년 6월26일 오후3시
장소: 한국일보사 3층 회의실
축제는 끝났다. 뜨거웠던 6월이 막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6월은 끝나지 않았다. 한국의 태극전사가 이루어낸 기적. 아니 지구촌 7,000만 한국인이 하나가 돼 쌓은 이 쾌거는 시간과 함께 그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월드컵은 이 곳 워싱턴 한인 동포사회에서 무엇인가. 신명과 흥을 줬고, 생애 최고의 기쁨을 줬고, 자존심을 줬고, 또 전에 볼 수 없던 하나된 모습을 가져다 줬다. 폐막을 앞 둔 월드컵 대회와 이 6월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다들 생활 리듬이 깨졌다고 할 정도로 이 달은 월드컵이 생활의 일부가 됐는데.
주: 대회 시작 때까지도 사실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폴란드에게 첫 승을 거둔 후 흥분되기 시작해 그 후로는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이민 생활이 무료한 건데 참으로 익사이팅한 경험이었다.
문: 한국을 다녀왔다. 폴란드, 미국전 두 게임을 현장에서 보고 돌아와 다음부터는 여기서 교민들과 함께 했다. 말할 수 없는 감격이었다. 미국에서 우리 젊은 세대가 코리아란 말은 썼겠지만 언제 대한민국을 외쳐본 적이 있겠나.
듀갠: 경기 있는 날 학교를 안나오는 한국 학생이 많았다. 각 학교에서 보고가 오는데 선생님들 목소리가 우려한다기 보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는 어조로 느껴졌다. 공부 조금 더 하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평생에 가장 즐거운 기간이었던 것 같다. 새벽부터 성도들과 함께 시간이 너무 기뻤고 좀더 좋은 환경을 제공치 못해 죄송스럽다.
-월드컵 대회가 이곳 교민사회에 준 것은 무엇일까.
문: 영주권자든 시민권자든 국가관의 정립이 필요하다. 한국지향적인 것이 애국으로 비치는 시대는 이제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을 응원하자는 말도 있었지만 한국과 같은 조가 돼버리니 그것이 쉽지는 않았다. 조국이 잘 돼야 교민사회도 발전한다. 그런 점에서 월드컵의 성과는 반갑고 경제성장 효과도 클 것이다.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국민소득 4배, 주가지수 2배 이상 성장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또 하나 한국인들이 순식간에 열기가 고조돼 하나가 되는 힘이 놀라왔다.
듀갠: 이곳 미국에서 한국사람이 어깨 펴고 살려면 자녀를 잘 키워야 한다. 그 애들이 잘 커야 다음, 그 다음 세대에서 당당한 한국인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아이들이 이번에 `자아’를 찾았다. 앞으로 이 아이들에게 축구는 오래 동안 많은 얘기거리가 될 것이고 흡족하고 긍정적이고 자부심이 강해지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독일전 전에 미국 동료직원이 심정을 묻길래 "긴장되고 힘들 것 같다"고 하자 "걱정마라. 독일은 팀만 있지만 한국은 7,000만이 뒤에 있지 않느냐"고 했다. 뭉클함을 느꼈다.
이: 선수 인터뷰 중 홍명보 선수가 "히딩크 감독도 훌륭하지만 체력 파워 기술 등 선수들의 능력이 하나로 결집된 결과"라고 한 것을 읽었다. 크게 공감했다. 동기 부여와 묶어주는 힘이 문제였지 우리는 원래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번에 그것을 100%, 아니 120% 발휘한 것이다.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잠재능력의 발견에서 의미를 찾고 싶다.
-축구협회가 주관해 메시야 장로교회에서 벌어진 응원전 등 단체 응원이 이번 대회기간 중 명물이 됐다. 교회들이 전에 보기 드물게 일반인에게 오픈했고 수천명이 모이는 등 엄청난 열기였다.
주: 16강 진출 확정 전 일정이 안 정해진 상태에서 응원전을 준비하는데 애를 먹었다. 장소가 마땅치 않았는데 교회에서 장소를 제공해 줬다.
이: 커뮤니티가 있고 교회가 있다. 한국인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문: 축구협회도 이렇게 규모가 커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한국에서 관전할 때 봤지만 전혀 사전 기획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사천리로 질서정연하게 벌어지는데 놀랐다.
이: 이곳에서도 끝난 후 별도로 청소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질서를 잘 지켰다. 너나 없이 하나가 되는 모습은 감격적이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도데체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나.
듀갠: 한국인이 원래 갖고 있었으나 감추어져 있었고 기회가 없어 표현되지 못하던 것들이 축구라는 계기를 통해 발산된 것이라고 본다.
이: 국민의 잠재력과 한국축구의 잠재력이 합해져 한꺼번에 표출됐다. 장점들이 드러난 것이다.
듀갠: 시골에서 자랐다. 김장이나 타작을 할 때면 다 같이 모여서 하고 자연스레 축제분위기가 된다. 이건 당시의 실생활이었다. 시대가 바뀌며 충분한 변화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잃어가던 이런 한국의 문화가 이번 기회에 드러난 것이 아닐까. 일시에 내 뿜은 것인데 생각보다도 큰 성과였다.
-이렇게 재발견된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이어가야 할까.
문: 부산에서 첫 경기를 이기자 부산 시장이 기념관 세우게 50억을 정부에 요청했다고 했다. 이래서는 안된다. 지금의 고양된 국민정신을 이어가려면 그럴수록 반성하고 차분하게 하나로 묶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본국 얘기겠지만 정치인이 각성해야 한다. 한국인은 원래 장점이 많다. 그동안 왜곡돼 있었을 뿐이다.
교민사회는 이번에 하나 된 경험을 바탕으로 서로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가 귀찮으면 남도 귀찮다. 자기 희생이 협력의 첫 걸음이다.
듀갠: 겉으로 드러나는 잔치 같은 일에 치중할 것이 아니다. 실생활에서 질서 규칙 법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사람끼리는 좀더 돕고 협조하는 정신이 필요하겠다. 교육청에서 월급 받고 당연히 해야할 직무를 했는데도 두고 두고 "고맙다"는 분들이 많다. 평소 얼마나 한국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서로 돕는 한인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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