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계속돼야 한다’
한국의 태극전사들이 한·일 월드컵을 무대로 펼쳐온 감동의 드라마는 한인들의 ‘정체성’과 ‘자긍심’, ‘결집력’을 다시금 발견케 하고 이를 한인사회의 단합과 도약의 계기로 승화시켜야 할 과제를 우리 앞에 던져줬다. 이번 월드컵이 한인사회에 몰고 온 새로운 현상들을 진단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는 월드컵 기획 시리즈 ‘월드컵 신화를 한인사회에’를 4회에 걸쳐 싣는다.
<목차>
1. ‘나는 자랑스런 한국인-2세들의 정체성 확립
2. 달라진 ‘코리안’-이미지 업그레이드
3. ‘우리는 하나’-단결하는 사회
4. ‘미래의 거름으로’-주류사회 도약
<1> ‘나는 자랑스런 한국인’
그들은 열광했다. 누구보다도 목청을 높여 ‘대∼한민국’을 외쳤다. 자신이 자랑스런 ‘코리안’임을 뼛속 깊이 각인했다.
이번 미주 한인사회를 휩쓴 월드컵 열풍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 1.5세와 2세 등 한인 젊은이들이 LA ‘붉은 열풍’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이 꼽히고 있다.
이들 한인 2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너나 할 것 없이 붉은 옷에 태극기를 들고 합동 응원 장소에 몰려들어 누구보다 열정적인 응원열기를 보여줬다. 실제로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한인타운에서 열린 대규모 합동 응원행사장 참가자들 중 70∼80%는 1.5세, 2세 등 젊은 한인들이 차지했다.
2세들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조국 한국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게 됐을 뿐 아니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됐음을 자랑스럽게 밝혀 평소 영어권 한인 젊은이들이 조국과 뿌리에 무관심하다고 치부하며 걱정하던 어른 세대를 놀라게 했다.
붉은 옷을 모두 함께 입고 ‘대∼한민국’을 다같이 외치면서 이들은 ‘내 뿌리는 한국이고 나는 한국인’임을 ‘몸’으로 느낀 것이다.
25일 새벽 한인타운 합동 응원장에서 만난 2세 최담(19·어바인·하버드대)군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이 위대한 나라인 것을, 한국인의 저력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고 태극기를 구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는 1.5세 김윤일(21·토랜스·엘카미노 칼리지)군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외국인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학생뿐만 아니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이른 새벽에 일어나 경기를 지켜보고 합동응원장소에 모여들었다. 그동안 자녀들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던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응원장소에 나왔다. 자녀를 데리고 합동응원장을 찾은 플러튼의 이상주(52)씨는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더니 두 번째는 언제 또 하느냐"며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말했다"고 흐뭇해했다.
허상길 LA한인회 사무국장은 "대한민국의 뜻도 잘 몰랐던 2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를 외치며 응원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한인 2세들이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조국애를 느낄 수 있게 된게 가장 중요한 성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사회 관계자들은 이같은 현상이 이번 월드컵으로 확산된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통해 소수계로서 주류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느껴온 한인 1.5세, 2세들이 확고한 정체성과 동질감을 갖는 계기가 됐기 때문으로 분석하면서 이것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심인보 민족학교 사무국장은 "이번 젊은이들의 월드컵 열기가 정체성 확립과 공동체 의식 확산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이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한인사회 차원 프로그램 등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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