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특파원 코너
▶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며칠 전에 뉴욕 금융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만나 들은 얘기를 소개한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긴 하지만,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나라입니다. 문제는 뼈를 깎는 금융 구조조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잠재력이 발휘되지 않을 뿐입니다. 중국은 무서울 정도로 빨리 시장 경제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하고 있는 곳은 일부분이고, 그 많은 인구와 지역이 모두 일어서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한국은 일본이 재기하기 전에, 그리고 중국이 따라오기 전에 앞서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선진 제도를 빨리 배우고 도입해야 합니다.”
뉴욕 월가 굴지의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그들이 전세계 시장을 놓고 트레이딩을 하면서 자신의 피를 물려준 한국의 미래가 보였기에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물론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면 한국이 일본과 중국을 앞설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이용해야 한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이 5년전 한국처럼 갑자기 붕괴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말로 벼랑에 몰렸다고 생각하면 집단적 응집력으로 해결해나가는 것이 일본 사람들의 특성이다. 일본은 전자 산업과 기계 공업에서 미국이 두려워할 정도의 높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국내외에 엄청난 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지난 10년 동안 지속된 장기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심판관을 자처하는 무디스는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두 단계 떨어뜨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신용등급은 에이즈가 득실거리는 아프리카의 보츠와나와 같은 수준으로 하락한다.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도 최근 인기가 떨어지면서 편안한 타협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80년대에 불침항모(不浸航母)임을 자랑하던 일본 경제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광대한 영토와 십억 인구를 가진 중국을 보자. 전직 경제관료의 말처럼 한국 경제는 앞으로 몇 년후에 ‘중국 쇼크’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손에 기름 묻히는 일거리는 이미 중국으로 건너간지 오래고, 조선, 철강 분야도 한국의 최대 경쟁자는 중국이다. 또 중국은 반도체, 전자, 자동차산업에도 뛰어들어 몇 년 후면 한국을 바짝 따라올 것임을 의식해야 한다.
그렇지만 중국 경제는 연간 8~10%의 성장률로만 포장할 수 없는 부분이 남아있다. 한국이 산업화 과정에서 겪었던 정치적, 사회적 진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중국은 80년대말 천안문 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했지만, 인터넷으로 확산되는 파룬궁은 저지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 공산당 이외의 정당을 허용하는 문제, 다양한 민족의 독립 요구를 받아들이는 문제 등이 중국이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도사리고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여 지내왔다. 오천년 역사를 돌아볼 때 중국의 통일과 분열이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일본 열도의 변화가 한국 역사에 그대로 투영됐다. 21세기를 시작하는 지금도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더 치열한 경쟁과 생존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이 자각해서 금융개혁을 단행하고, 중국이 산업화 과정의 부작용을 극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빠르면 3~5년, 늦어도 10년이 걸리는 일이다. 한국은 이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보다 선진적인 시장 시스템을 도입하고, 고도의 기술력을 선점할 경우 일본의 재기와 중국의 고도성장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호재가 될 것이다.
현정부가 내걸고 있는 ‘허브 코리아(HUB KOREA)’의 슬로건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호기의 활용 여부는 한국 차기정부에 달려있다.
지금 차기 대권주자들은 내부지향적인 싸움을 벌이는데 정신이 없는데, 이제 눈을 돌려 동아시아와 세계, 그리고 5~10년후의 한국을 내다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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