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백악관은 미국대통령의 관저이며 집무실을 겸한 건물이므로 하루 24시간 세계의 정치를 움직이는 곳이다.
1800년 2대 애덤스 대통령 때 완공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이 건물은 1814년 미영전쟁 때 일부 소실되어 재건후 외벽을 하얗게 칠한데서 백악관(White House)이란 이름이 생겨났고 26대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 때 공식명칭과 함께 백악관 문양을 공식 서류에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백악관의 구내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건물 맞은편 광장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수많은 데모가 연일 계속된다. 많은 군중이 모일 때가 있고 단독 시위를 벌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유분방하고 어처구니 없는 내용을 주장하는 시위도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세계의 정치가 요리되는 백악관의 일부는 일반 관광객에게 개방되기도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대통령 관저이며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는 매우 대조적인 점이 많다. 지금 청와대가 있는 자리는 조선시대에 경복궁의 뒤뜰이었는데 일제가 경복궁 안에 청사를 지으면서 이 곳에 총독 관저를 지었다.
해방 후 미군정 때는 군정장관의 관저로 사용되었고 정부수립 후에는 경무대란 이름으로 대통령 관저가 되었다. 4.19 후 독재정권의 상징처럼 된 경무대란 이름 대신 청기와로 지었다는 뜻으로 청와대로 개칭되었고 증축, 개축을 거듭하는 가운데 문민정부 때 일제 총독이 기거했던 구관건물이 철거되었다.
이 청와대를 가 본 사람이라면 그 분위기에 질리게 되어 있다. 일반인들이 통행하는 시가지에서 인적이 없는 대로를 한참 들어가야 청와대에 이르는데 드문 드문 경비가 삼엄한 이 길은 걸어가기에는 너무나 멀고 택시를 타도 도중에서 내려야 하니 특별한 사람이 탄 특수차량만 청와대 앞에 이를 수 있다. 그러니 아무나 건물에 접근하여 구내를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청와대와 백악관 안에서 일하는 시스템도 아주 대조된다. 백악관은 대통령의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를 중심으로 각 참모들의 방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대통령과 참모는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방을 들락거릴 수 있고 가끔 공개되는 자료를 보면 대통령과 참모가 의논하는 모습이 마치 친구 사이처럼 친밀하고 격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는 비서실이 대통령 집무실과 다른 건물인 별관에 있으므로 수석비서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거나 중요한 보고가 있어야 대통령을 만난다. 대통령과 참모의 관계도 친구처럼 밀접한 것이 아니라 엄한 아버지 앞에 선 아들처럼 꾸중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일테니 바른 소리나 쓴소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청와대를 옮기겠다는 말이 최근 나오고 있다. 지난번 민주당 경선 때 한 후보자가 청와대를 옮기겠다고 하더니 이번엔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를 떠나겠다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한국의 청와대는 마치 왕조시대의 구중궁궐처럼 바깥 세상과 격리되어 있다. 이 청와대는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는 이 시대에도 절대 권력을 행사하면서 성역의 보루를 지켜왔다. 그러므로 이제 그 청와대는 없애야 한다. 청와대를 옮기겠다는 것은 옳은 생각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저택과 집무실만 옮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고가 바뀌고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민주국가의 대통령은 천재도 영웅도 아닌 평범한 사람인데 한국의 대통령은 당선되기만 하면 신에 가까운 절대권력자로 변모해 버린다.
5공과 6공, 문민정부와 지금의 국민정부가 모두 그러했다. 그런데 그런 대통령의 위상이 임기 말에는 한결같이 어떻게 되었는가. 대답이 필요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헌법에 보장된 권한으로 국민에게 최대한 봉사하는 봉사직이란 사고로 오로지 이 목적에 부합하는 능률적인 시스템으로 일해야 할 것이다.
과거 대통령들의 실패는 이제 많은 사람들의 대통령에 대한 관점을 바꿔놓고 있다. 구중궁궐 청와대의 성역 안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는 선거에서 대통령이 될 꿈을 아예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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