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의 아들들이라면 이제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난다. 툭하면 수억 수십억대에 달하는 재물을 챙긴 이들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으면서 한 푼 두 푼 모아 열심히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억원이 그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지 모르지만 힘겹게 돈을 벌어 알뜰 살뜰 살아가는 해외 한인들에게는 평생에 만져보지도 못할 거액이다.
그런 엄청난 돈이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의 아들들을 대상으로 오갔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깨끗한 정부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한 약속을 배신하고 한 가닥 희망을 부서뜨린 그들의 비리는 생각하면 할수록 분통터지게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이 부친의 비자금과 관련 조사를 받지를 않나, 노태우 대통령의 아들이 6공 비리 비자금 사건으로 정치의 길을 포기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은 각종 권력과 이권에 개입하는 바람에 구속됐다 풀려난 지 불과 얼마나 되었나.
그런 부패를 막겠다고 큰소리치고 나선 문민정부의 아들들 마저 각종 비리에 연루돼 물의를 빚고 있다니... 이제 한국국민들은 누구를 믿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역사를 알면 새로운 교훈을 얻는다고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은 더욱 자숙하고 있어야 했던 인물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우리들을 너무 많이 실망시킨 건 사실이다.
대통령이 모두 아들들 때문에 임기 마지막엔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현실은 아마도 한국이란 나라 밖에는 없지 않을까 싶다. 역사는 정직한 바퀴로 굴러가기 때문에 정도를 가야 한다.
더러워진 흙탕물은 아무리 감싸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 법이다. 당장은 돈의 행방이 감춰질지 몰라도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 있다. 시체에다 향수를 뿌린다고 냄새가 지워지겠는가. 아무리 덮어도 썩은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다. 국민의 심판은 칼날과 같은 것이다.
조그만 액수라 해서 절대로 눈감아지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아들이라면 신분이 물을 맑게 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렇게 더러운 진흙탕으로 흐려놓고 말았다. 이제 그들은 준엄한 법의 심판대 위에서 날카로운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정치라는 게 권모술수라고는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근본 명제는 정직과 미래를 위한 창조이므로 인류사회의 가치들을 궁극적으로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정치가 바르게 가지 않는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떠나온 한국은 점점 더 사회 기본을 잃어가고, 정치적으로도 너무 허약해 보이고, 국가를 바로 하고 기름지게 만드는 위계질서도 너무 파괴돼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이번 사건이 처음 불거져 나올 때 언론이 여론화하고 문제를 들춰낼 때는 시원함을 느낀 건 어쩔 수가 없다. 한인들은 이 사건에서 핵심이 드러날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한 건 사실이다.
물론 김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도 타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공로가 큰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도 그는 그런 공로가 나타나기라도 했지 숨어서 투쟁하다 정체도 드러내지 못하고 이슬같이 사라진 사람들도 너무나 많이 있다. 지도층 권력의 부패상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는 아직도 ‘세계화’ ‘세계화’ 부르짖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너무 허약하고, 너무 곪아 터져 여기 저기서 썩는 냄새가 풀풀 난다. 때문에 국가관이나 진정한 도덕적 기강확립은 아직 요원한 것 같다.
이번 같은 비리만 터지지 않았더라도 이번 정부는 그런 대로 잘 마무리될 수 있었을 텐데 끝내는 국민의 기대와 꿈을 저버린 셈이 되었다. 김 대통령의 세 아들을 둘러싸고 그동안 얼기설기 얽혀졌던 무수한 인맥들은 생각하면 웬지 마음이 씁쓸하다.
뇌물을 들고 찾아가 권력자의 아들에게 손 비비고 무언가 부탁하며 읊조렸을 청탁자들의 얼굴과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그들의 주문을 들어주곤 했던 한심한 대통령의 아들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아직도 한국의 세계화는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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