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5월2일 낮 구 아드모어 공원. 폭동의 와중에 목숨을 잃은 고 이재성군을 넋을 기리기 위해 한인들이 하나 둘씩 몰려들었다. 사흘 전부터 LA 한인타운에 몰아닥친 폭동의 노도 앞에 숨을 죽인 채 비명 한번 제대로 질러보지 못했던 이들의 눈가에는 좌절과 실의를 넘어 울분과 분노의 이슬이 맺혀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들은 어느새 이군의 영전 앞에 질서 정연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We Want Peace, We Want Justice’...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먼지 묻은 취재수첩과 기억 속에는 그 날의 감동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 날 한인들이 보여준 성숙된 시민의식은 ‘아, 우리도 뭉치면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하는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올림픽과 웨스턴을 따라 평화와 정의의 구호를 외치면 행진해 가는 10만 한인들의 함성 앞에 경찰과 주 방위군 관계자들도 숙연해 하는 모습이었다. 지금도 가깝게 지내는 한 백인 경관이 시위대를 인솔하며 한 말이 기억난다. "한인타운에 이렇게 한인들이 많은 줄 몰랐다. 그 어느 커뮤니티가 시위를 벌여도 이처럼 감동적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 경관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땡볕아래 더위를 먹은 듯한 한인 할머니를 부축하러 시위행렬 속으로 사라졌다.
4·29폭동이 100년 미주 이민역사에 최대의 피해를 가져온 비극이었다면 10만 평화대행진은 한인들이 한 마음으로 뭉쳐 단합된 힘을 대 내외에 과시한 우리이민사의 최대 행사였다. 보통한인들이 이뤄낸 역사적인 평화대행진은 폭동으로 아수라장이 된 LA에 화합과 재건의 희망을 불어넣었고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탓하며 주류사회를 남의 집 보듯 하던 한인들에게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난리통에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뒷전에 숨어있던 ‘정치인과 단체장 나리들’이 뒤늦게 나타나 목소리를 높이려는 통에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들에게도 평화대행진은 각성의 기회를 제공해 줬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폭동 10주년을 맞아 오늘 오후 4시 서울국제공원(구 아드모어 공원)에서는 당시의 감동을 되살리기 위한 평화대행진 재현행사가 열린다. 폭동을 경험한 1세들에게는 폭동의 의미와 교훈을 되새겨보는 자리가, 폭동을 경험하지 못한 2세들에게는 부모세대의 아픔과 좌절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주말 한때 짬을 내어 동포들과 함께 평화와 정의의 목소리를 높여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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