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걸어 5분 거리에 신기료 장수가 있다.
구두굽이 닳아서 딱딱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마땅한 구두 수선집을 찾지 못하다가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동네 후미진 골목 모서리에 위치한 ‘존스 슈즈 리페어’의 신기료 장수.
마음씨 좋게 생긴 백인 할아버지가 구두 굽을 갈아주는 그 집은 오래된 건물의 단층 판잣집이지만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은 반질반질 윤이 나고 수선된 구두, 각종 끈이 가지런히 정리된 진열장, 구두굽을 가는 작업장조차 깔끔하기 이를데 없다.
구두 십여 켤레를 맡기고 1주일 후 찾았는데 헌 구두가 갑자기 새 구두처럼 반짝거리는데다 수선료가 생각 외로 싸다. 신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너무 편해서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검정 구두는 발등 부분이 떨어져 구멍이 나 있었는데 실로 꼼꼼하게 꿰매놓기까지 했다.
자기 일에 대한 성실성, 꼭 받을 것만 받는 정직성, 아무리 허름한 것이라도 성의를 다한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 할아버지를 보면서 스피노자와 도산 안창호를 떠올렸다.
우리는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Spinoza:1632-1677)의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명언을 알고있다.
아무리 천둥 번개가 쳐도 나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내 길을 가겠다, 어떤 위기 속에서도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그 말은 후손들을 위해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성실을 보여준다.
평생 명성과는 인연 없이 고립된 채 안경알을 갈고 닦는 직업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자신의 사상을 펼쳤던 스피노자, 그는 사물에는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는 자존성이 있다며 이것을 근거로 정치와 도덕의 사상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한국 대선을 앞두고 한국민뿐 아니라 뉴욕 한인들의 머리까지 어지럽히고 있는 한국 정치인들은 정직성과 성실을 잃었다.
그들도 청년기에는 절개 있는 삶, 소신 있는 삶으로 평생을 살리라고 결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이익을 따라 철새처럼 떠돌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늘의 적과 타협하고 동지를 배신할 수 있다는 것에 언제부터 길들여진 것인지? 어떤 눈치도 안보고 자기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한결같은 사람이 아쉬운 때이다.
또한 도산이 평양의 광풍정에서 몰려든 군중들에게 행한 연설이 있다.
“나라 일을 하는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저 평양시가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지금 장사하는 나라 일을 하는 것이고, 저 능라도에서 김을 매는 사람은 호미를 가지고 나라 일을 하고 있으며......어떤 사람은 붓으로 입으로써 나라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은 무엇으로 나라 일을 하는 지 아십니까. 시방 여러분은....귀를 가지고 나라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일본 사람에게 땅을 팔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마치 자기 넓적다리의 살을 베어먹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처한 자리에서 애국하는 길을 역설했고 “정직과 성실만이 이 나라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뉴욕 한인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인 과당경쟁이 빚는 어지러운 상계 질서와 뉴저지 일대 부동산 매입에 한인간의 과열경쟁이 빚은 가격 폭등 사태를 보면 그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 백 달러 더 준다고 오랫동안 몸담아온 직장을 후임자도 정하지 않은 채 헌신짝처럼 차버리거나 영주권 받자마자 그 다음날로 스폰서 해준 직장을 그만 두는 등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
조금 불편해도 참고 모자라도 견디고 그러다 보면 힘든 점이 해결되고 또 넘치게 하다보면 꼭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내 마음, 뭔가 하늘로부터라도 받을 것을 남겨놓은 여지가 있는 그 마음이 충만하지 않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두 나라에 얼마든지 애국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성실과 정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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