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사회와 자연환경, 컴퓨터 공해로 우리 주변에는 좋은 것보다도 해가 되는 것이 더 많다.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인간관계는 물론, 먹고살기도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우리가 이대로 안일하게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무언가 단단하게 무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인간은 보통 돈이나 권력, 명예를 추구하면서 사는데 따지고 보면 돈은 언제나 위험부담이 따른다. 권력은 부패하고 파멸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이 있어 반드시 좋다고 만은 할 수 없다.
재물은 한낱 종이에 불과하고 권력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과 같이 하나의 꿈이요, 환상일 뿐이다. 그나마 명예는 있으면 좋긴 하나 명예도 요즈음은 돈이 개입되면서 식상한 지 이미 오래다. 본래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고 겉이 화려하면 속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물질이나 권력, 명예보다 심오한 내면의 세계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정신적 세계를 추구할 때 오히려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파른 이민사회에서 정신적 세계만 단단하다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장애를 거뜬히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신적 풍요는 종교 외에 ‘책의 세상’으로 들어가면 얼마든지 누릴 수가 있다.
책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면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삶이 훤하게 보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통상 인생의 등대요, 나침반으로 정의한다. 책이란 이 세상의 무엇보다 정직하고, 지적이고, 밝고, 진실한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홍수처럼 쏟아지는 책들을 보게 되면 오히려 눈이 찌푸려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웬 책은 이렇게 많이 나와” “이런 건 왜 썼나” 하면서 불만스러워 할 때도 있지만 이런 책도 보게되면 하나라도 얻는 것이 있다. 읽다보면 평소 못 보던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점만 가려서 얻는다면 남독(濫讀)해도 손해볼 것이 하나도 없다. 책의 세계가 좋은 점은 새삼스레 말할 필요조차 없다. 여행이나 마찬가지로 지적인 세계나 예술적인 세계에서도 작가와 사귈 수 있는 특수함이 있다.
책은 작가와 함께 호흡하고 같이 생각함으로써 인생의 진로, 방향,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양서를 통해 좋은 스승과 지도자를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공기를 쐬는 것과 같다.
지구상의 모든 악의 분출은 다 사랑하는 마음과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과 지각력이 없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교육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나오지만 그 외 필요한 양식이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책밖에 없다.
특히 역사가 기록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한인사회 내에 한국이나 한인사회에 관한 책자조차 없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이민사회 속에 산다는 건 하나의 집단 생활인데 기록이 없다면 아무리 문명시대라고 해도 선사시대에 사는 거나 같은 것이다. 한인사회는 책 읽는 사람도 많지 않고 우리의 이민역사가 기록된 책도 하나 없는 그야말로 지식의 황무지나 다를 바가 없다.
중국 고사에서는 도단(刀端;칼끝), 설단(舌端;혀끝), 필단(筆端;붓끝)을 조심할 것을 경고했는데 그 중에서도 책이 주는 비중을 생각하면 필단이 우선 이라고 본다. 못 먹고, 못 배우고, 가난해서 생긴 건 동정이라도 하지만 어느 민족보다 높은 교육수준이라고 하는 한인사회가 도서하나 정착돼 있지 않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러고도 우리가 제대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요즘 사람들은 안일하게 지식을 TV나 라디오에서만 얻으려고 하는데 이 것은 의식수준이 낮은 게으른 민족의 모습이다.
일본이나 중국인들은 한국인들 보다 훨씬 책을 가까이 하고 있다. 도서관마다 그들의 발길이 붐비고 그 나라에 관한 책들이 부러울 정도로 빼곡하다. 23일은 지구촌 ‘책의 날’이다. 이 날은 세계 곳곳에서 책을 선물하는 행사가 펼쳐질 것이다.
우리도 이날만큼은 사랑하는 가족이나 다정한 친구에게 좋은 책을 골라 한번 선물해보면 어떨까,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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