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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노키아사의 지난해 매출은 280억 달러로 핀란드 정부의 연간 예산과 맞먹는다. 빙하의 나라에서 발원한 이 회사는 미국의 모토롤라를 누르고 세계 무선전화기 시장의 37%를 장악, 선두를 지키고 있다.
한국에서는 노키아와 핀란드에 대해 ‘강한 기업이 강소국(强小國)을 만들었다’며 거의 신화적으로 미화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여러 후보들도 유럽과 아시아의 ‘강소국’을 한국 경제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언론 매체도 핀란드, 스웨덴, 아일랜드, 네덜란드, 싱가포르와 대만에 기자를 보내 현지 취재 시리즈물을 경쟁적으로 다루었다. 한국처럼 나라 규모는 작지만, 노키아나 에릭슨, 필립스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배출하고, 높은 국민소득을 구가하고 있는 나라를 배우려는 자세는 높이 살만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추앙받고 있는 ‘강소국’들에서 어떤 문제들이 생기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강소국은 한 두개 기업 또는 업종에 집중해 있기 때문에 주변 강대국이 호황일때는 잘나가지만, 강대국이 조금만 흔들려도 크게 흔들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노키아는 지난해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매출과 수익이 줄었고, 그 때문에 핀란드의 성장률이 1%대 이하로 떨어졌다. 기업이 어려워지면서 노키아는 핀란드에서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여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북유럽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사회보장제도가 발달돼 있고, 성인이 직장을 잃으면 15개월 동안은 사회보장기금으로 먹고 살수 있다. 그러자면 기업과 직장에 일하는 노동인구가 엄청난 세금을 내서 실업인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 기업은 자선단체가 아니다. 핀란드 기업임을 고집하려면 세금을 너무 많이 물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이전하고 싶다는 얘기다.
아일랜드는 전통적인 농업국으로, 제조업이나 서비스 분야가 취약하지만, 인터넷과 디지털 시대를 맞아 각광을 받았다. 영어가 통하고, 인건비가 싸며, 교육 수준이 높기 때문에 선진국 하이테크 기업들이 대거 아일랜드에 공장을 세웠다.
그렇지만 미국과 유럽의 하이테크 산업이 무너지면서 이 섬나라의 경제도 심하게 위축되었고, 이제 아일랜드 사람들도 굴뚝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고 한다.
가깝게 대만과 싱가포르는 첨단 기술 산업에 집중해서 이른바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지난해 두 나라는 97년 아시아 통화위기때보다 더 큰 침체를 겪었다.
이웃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제가 무너지는 것보다 그들의 물건을 사주었던 미국의 하이테크 산업이 붕괴되는 것이 더 큰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 세계 경기침체를 원만하게 극복하고 빠르게 회복하는 나라로 꼽히고 있다. 산업 구조가 전자, 자동차, 조선, 중공업, 화학 산업등으로 비교적 다각화돼 있기 때문에 미국의 하이테크 산업이 무너졌어도 다른 산업에서 보강할 여력이 있었고, 6,000만 인구의 소비력이 경기 침체를 막았던 것이다.
한국이 노키아에서 배울 점은 강소국의 논리가 아니라 세계화의 이점이다. 노키아가 1865년에 창업했을 때 현지의 풍부한 목재를 이용한 제지산업으로 출발, 그후 고무등 화학산업에 진출한 국내기업에 불과했다.
노키아는 창업 100년 후인 1960년대에 케이블 산업에 진출, 디지털 산업에 손을 댔고, 그 연장선에서 무선통신사업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이제 노키아는 핀란드에서의 매출이 전세계 매출의 1.5%에 불과하고 주주의 90%가 외국인인 글로벌 기업이다.
한국에서 ‘강소국’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고, 이들 국가를 선망하는 배경에는 한국 땅덩어리가 좁다는데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은 이제 강소국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강대국이 될 필요가 있다.
남북한 합쳐 인구가 1억에 가까운데 아직도 소국을 모델로 지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기업도 이제 세계를 무대로 장사를 하는 시대가 됐고, 한국은 다만 기업이 발원한 고향쯤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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