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제공원의 아드모어와 샌마리노 코너에는 새벽부터 하루의 일거리를 찾아 나오는 남루한 차림의 일용노동자들이 수백명씩 모인다. 이들은 역시 새벽부터 필요한 노동인력을 찾기 위해 오는 페인터나 가드너, 건축업 관계자 등에 의해 선발되어 한두 명씩, 또 여러 명이 한꺼번에 떠난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려 그나마 활기 찼던 일용노동 인력시장은 오전 10시께가 되면 ‘끝까지 뽑히지 못한 노동자’들의 힘없는 눈동자 마냥 풀기가 없어진다.
혹시나 하고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30~40명에게 매일 이 시간이면 따뜻한 선물을 들고 나타나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 허름한 밴에 뜨거운 물이 담긴 대형 주전자 두 개와 컵라면, 커피, 또 의류나 생필품 등을 가득 채운 김요한 신부(46·세인트 메리스 성공회 성당 한인선교센터 디렉터)가 그.
김 신부의 밴이 나타나면 일용노동자들이 한꺼번에 김 신부에게 모여든다. 반장격인 사람이 스스로 교통정리를 하며 컵라면을 하나씩 나눠준다. 뜨거운 물을 부어 컵라면과 커피를 마신 이들은 김 신부가 차에 실어 온 의류나 가재도구, 생필품 등도 나눠 갖고 김 신부가 떠날 때까지는 주변 청소까지 깨끗이 한다.
1년 3개월 동안 계속해서 친한 사람들도 생겼고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란 한국말 한두 마디는 배워 인사도 한다. 요즘에는 한인도 2명이 매일 이곳에 나타난다."요즘은 날씨가 추워서인지, 인력시장 사정이 나빠서인지 뽑혀가지 못하고 남은 사람들 수가 많아져서 안타깝습니다. 10시 이후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 못하고 늙은 사람들이거든요. 그들에게 잠시라도 추위와 절망을 잊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입니다"
그는 재직하는 교회건물이 공원 가까이 있어 일용노동자들을 자주 보게 되면서 성경의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일꾼에 관한 비유가 생각난 것이 이의 시작이었다.
"일용노동자들에게는 이 거리를 지나가는 밴이나 대형차, 또 이들을 쳐다보는 눈이 희망입니다. 희망과 실망이 교차하다가 결국은 허탕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실망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줄 수 없을까 하다 버너와 큰 물통을 들고 공원으로 물을 끓여 컵라면을 주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중요한 일일업무가 된 셈이지요"
컵라면뿐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들까지 도네이션 받아 나눠주는 김 신부에게는 또 한명의 동역자가 있다. 윌셔가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성공회 보좌신부이자 학교 교목인 고애단 신부(49). 고 신부도 가끔 컵라면 사역에 동행하고 교회와 학교의 교인이나 학부모 모임 때마다 김 신부의 사역을 지원해줄 것을 호소한다.
그래서 현재 매달 100달러를 고정 지원하는 학부모나 의류나 생필품 도네이션도 제법 많아졌다. 도네이션 물품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 픽업해오는 김 신부여서 김 신부의 차나 집안, 사무실은 잡동사니 투성이다.
"뭐든지 좋지만 특히 남성 의류가 현재 필요합니다. 버리기 아까운 것이 아니라 남 주기 아까운 것을 내놓는 것이 도네이션입니다" (213)383-8955. jungi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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