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파원 코너] 김인영 (서울경제 뉴욕특파원)
한국은 바야흐로 대통령 선거철이다. 누가 다음 5년의 정권을 잡느냐 하는 것은 전국민적 관심사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직을 포기하고 정치 불개입을 선언했기 때문에 너도나도 후보 경선에 뛰어들고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도 경선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고,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김영삼 전대통령이 만난 사실을 놓고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집권여당에 여러마리 용이 떠오르고, 야당에서 독보적인 후보가 버티고 있는 모양새는 5년전과 어찌 그렇게 비슷한가.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이번 대선에서 과거와 다른 큰 차이점이 하나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해외의 유권자, 즉 국제자본시장이 참여자라는 사실이다.
10년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국제금융시장은 국경을 허물고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정치인은 국경을 경계로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하지만, 국제 금융시장은 하루에도 수조 달러씩 국경을 넘나들며 지역구에 담을 쌓고 있는 정치인을 옥죄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 사태를 보더라도 페르디난도 델라루아 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지만 국제자본의 지지를 받지 못해 임기를 2년 남기고 물러나야 했다. 2위 경제대국인 일본도 국제 시장의 불신을 받아 경제가 가라앉고, 거의 해마다 총리가 경질되는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글로벌 시대에 정치인이 해외 유권자의 미움을 사면, 경제 운영에 실패하고, 결국 국내 유권자들의 저항에 부딪히는 새로운 정치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유권자는 ‘1인=1표’의 민주주의 권리를 행사하지만, 해외유권자는 ‘1달러=1표’라는 돈의 논리를 편다는 사실이 다르다. 해외유권자는 그나라 국민(유권자)이 원하는 복지정책과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투자한 돈이 이익을 실현할 것인지, 그런 시장을 만들어 놓을 것인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외의 유권자가 한국 선거에 영향력을 미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번 대선을 앞두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세 대통령 후보 중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IMF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 표가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세 후보가 IMF의 요구를 받아들인 전례가 있다.
아직은 선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국제시장의 우려가 약하고, 최근 경제 사정이 호전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뉴욕 월가로 대변되는 국제금융시장이 한국 경제를 조망할 때 이번 대선을 중요한 변수로 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에 만난 미국 금융인들은 한국 대선과 관련, 몇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했다. 첫째가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경제개혁이 다음 정부에서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고, 둘째 다음 정권에도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에 개방적으로 운용될 것인지 하는 점이다.
물론 한국 정당은 좌와 우에 대한 약간의 경사가 있지만 모두가 보수 세력이기 때문에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 질서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국제시장에서 보고 있다.
그렇지만 글로벌 시장이 요구하는 개혁과 개방에 한국의 차기정부가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인지에 해외 유권자의 관심은 국내 유권자만큼이나 깊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80년대 영국의 마가렛 대처 총리는 영국병의 근원이었던 노동조합과 싸워 이기고, 시장 경제원리를 도입, 경제에 대대적인 수술을 가했다. 현재의 토니 블레어 총리의 노동당은 대처의 보수당을 누르고 집권했지만, 대처의 개혁주의를 그대로 이어받아 지난해 세계 경제가 동시침체에 빠졌을 때도 플러스 성장을 구가했다.
정치인도 글로벌 시대의 흐름을 타야 한다. 21세기 첫 대선에서 한국의 대권주자들은 국내 유권자를 얻기 위해 구습을 재연할 것이 아니라, 눈을 해외로 돌려 해외유권자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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