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일할 때 알게된 한 언니가 있었다. 어린 아들과 남편과 함께 11년이 넘는 힘겨운 이민생활을 해왔음에도, 영주권이 없어 고생하는 언니를 보고있으면 늘 가슴이 아프곤 했다. 그사이 힘든 식당일에 언니 몸도, 아저씨 몸도 성한 곳 없고, 언어의 문제로 아들과 대화마저 단절돼 무척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언니 부부에게 단하나 삶의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아들의 영주권이라 했다. 내년이면 16세라 운전면허증을 딸 수 있다고 벌써부터 들썩이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 아직 아들에게 체류신분의 문제를 알려 주지 못한 자신이 무슨 큰 죄를 짓고 있는 것만 같아 가슴 한켠 늘 답답해져 온다는 언니.... . 아들은 스스로가 불법체류자란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다. 겉모양은 한국사람이어도, 이미 생각도 언어도 미국사람인, 그렇게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 .
"한국으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지... . 그렇다고 저 녀석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진학이 불가능한데 그냥 살라고 하기에도 막막하고... . 나도 어떻게 해야될 지 모르겠다. 이젠 정말 막다른 길에 이르렀나 싶다. 아저씨 몸이 저렇게 아프니, 한달에 식당 웨이트리스로 나 혼자 버는 돈, 집세 내고, 식비충당하고, 차 페이먼트 내고, 아이 학교 보내고... 이제 너무 힘들다. 그래도 아이 신분문제만 없으면 참고 살 것 같은데 어쩌니... "
이민자의 자녀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아빠 손잡고 엄마 등에 업혀 따라온 아이들이다. 시민권자의 자녀와 함께 먹고, 영주권자의 자녀와 함께 뛰놀고, 불법체류자 자녀와 함께 교육받고 자란 하나 다를 것 없는 ‘이민자’의 아이들이다. 시민권자의 자녀가 시민권부모를 택해 이곳에 오지 않았듯 영주권자의 자녀가 영주권 부모를 택해 이곳에 오지 않았듯, 그렇게 불체자의 자녀도 불체자 부모를 택해 이 곳에 오진 않았다. 그러나 사회는 유달리 불법체류자의 자녀들에게만 그들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현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이러한 상황을 누군가 ‘현대판 신분상속’에 비유했던 기억이 난다. 현대를 살고 있지만 부모 신분의 문제로 교육과 사회활동의 기회를 박탈당해야 하는 아이들이 과거 노예제 시대, 유전되는 신분으로 부모를 따라 노예가 되어야했던 아이들과 어느 정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져 있다 생각해 다소 과장을 더해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구석에서 장난치며 무언가에 열중인 초등학생 내 아이 둘을 바라보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권리를 되찾기 위해 피 흘려 간 수 많은 흑인 노예들을 떠올렸다. 평등과 자유를 위한그들의 투쟁이 우리에게 안겨준 소중한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보았다. ‘쇠사슬과 굴종이아닌, 보다 평등한 사회, 열린 기회와 건강한 성장이 보장되는 사회를 유전해 주고 싶었을텐데..., 대를 이어 물려주고 싶었을 텐데.. . ‘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물려 줄 세상은보이지 않는 ‘신분’의 장벽으로 아이도, 어른도 다 어깨 펴지 못한 채 숨차게 살아가야 하는또 다른 불평등, 또 다른 차별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이번 의회에 공동 상정된 ‘불법체류자 자녀들의 사면법안’ 기사를 읽으며, 내내 이 법안의 통과와 빠른 적용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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