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절친한 친구가 얼마 전 남편과 차를 타고 가다가 교차로에서 과속으로 돌진해오는 음주운전자의 차에 들이 받쳐 남편이 사망하는 불행한 사고를 당했다. 졸지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참담함으로 몸서리치는 친구는 영안실에서도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식음을 전폐한 친구의 퀭한 눈동자에서 나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절망과 허무를 보았다. 문상하러 온 많은 지인들은 친구의 꺼져 가는 삶에 다시 불씨를 지펴 주려고 온갖 위로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눈물로 슬픔을 같이 나누었다.
한편 그 자리에는 문상하러 온 친구들끼리 여고 졸업 후 오랜만에 해후하는 반가움이 있었다. 친구 A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슬퍼하는 친구를 옆에 두고 동창들을 만나는 반가움이 상존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삶의 무대라니...”
A는 15년 전쯤 막내 동생을 잃었는데, 그 동생이 세상을 떠나던 바로 그 날 또 다른 동생이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한 동생을 떠나 보내야 하는 비통함과 조카의 새 생명을 맞이하는 기쁨의 교차 속에서 A의 가족은 울고 웃으면서 어찌 할 바를 몰랐다고 들려주었다.
그 날 이후부터 A는‘지금 바로 여기(here and now)’라는 삶의 철학을 채택했다고 한다. 자신이 놓여 있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달리 길이 없지 않느냐는 반어법 적인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레온카발로의 오페라‘팔리아치’중‘의상을 입어라’라는 유명한 아리아가 있다. 어릿광대인 주인공 카니오는 무대에 서기 전 아내 네다의 부정을 알고 고통으로 마음이 찢어진다. 그러나 자신은 무대에 서서 다른 사람을 웃겨야 한다. 연극은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떤 고통이나 모순이 있어도 삶은 계속 이어가게 되어 있다. 여전히 모순 투성이고 불안하고 두렵고 무력하건만 우리는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때로는 회피하고 때로는 극복해 가는 그 자체가 인생의 드라마이다.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방법이고 나중에는 그렇게 밖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연민과 회한이 겹쳐 더욱 큰 고통이 따른다. 결국 해결은 문제를 정면 대결하여 극복하는 길밖에 없다.
역설적 방법이지만 최근 나는 청소년들과 대화할 때마다 “지금 네가 겪고 있는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그러나 한편으로 이 고통은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라고 권한다.
슬픔, 고통, 치욕, 실수 등 모든 나쁜 일들은 우리의 인생에서 잠시 다가왔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것에 동반되는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들 역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변화된다. 왜냐하면 한 가지 감정만이 우리의 마음을 꿰차고 들어앉는 일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우울한 하루가 지나가면 밝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듯이, 고통스런 일에 부닥치게 되면 나는 늘 나 자신에게 “이 분노는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다”고 타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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