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설적 카레이서 언하트 죽음에 고향주민들 통곡
지난 주 미국인들은 자동차 경주의 수퍼스타 데일 언하트의 급작스런 죽음에 큰 충격을 당했다.
언하트의 죽음은 그의 레이싱 인생 만큼이나 극적인 것이었다.
그의 차는 데이토나 500마일 대회 마지막 구간을 달리던 도중, 다른 차와 충돌하면서 우측 벽으로 돌진했다.
시속 190마일에 육박하는 무시무시한 스피드 앞에서는 최첨단 안전장치도 무용지물이었다. 일요일 오후, TV 앞에서 광란의 스피드를 즐기던 수많은 미국인들은 순식간에 벌어진 충격적 사고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중격에 휩싸인 사람들은 언하트의 고향인 노스 캐롤라이나주 무어스빌 주민들이었다.
한 언론은 이를 가리켜 "언하트의 죽음이 고향주민들의 가슴에 구멍을 내었다"고 표현했다. 게중에는 흐느껴 우는 사람들도 보였다.
또, 사고직후 타운에 위치한 월마트에는 언하트 관련 레이싱 장난감을 사려는 사람들로 줄을 이었다. 월마트 장난감 코너에는 언하트의 넘버3 레이싱카 모델을 필두로, 언하트 T셔츠, 언하트 레이싱 자켓, 언하트 시트쿠션 등이 진열되어 있다.
사고당일 이들 장난감들은 몇시간 만에 매진되었다.
월마트의 부매니저 에이시 앨러비는 "이곳 주민들에게 언하트는 레이싱의 마이클 조던이었다"고 말한다.
사고 다음날 아침에 열렸던 임시추도식에도 추도행렬이 이어졌고 수많은 차량들이 길을 메웠다.
한 추도객은 "언하트, 당신은 내게 신과 같은 존재였다"고 갈겨쓴 카드를 바치기도 했다. 또, 타운에서 가장 멋진 건물 중 하나인 ‘데일 언하트 주식회사’ 건물에는 수많은 주민들의 추도 메시지가 적힌 셔츠나 장난감 등이 걸려 있었다.
데일 언하트는 레이싱 스포츠의 최고 스타였을 뿐 아니라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하나의 기업이었다.
그는 통산 76회의 레이싱 우승을 통해 상금으로만 4,100만달러를 벌어들였고,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한 비즈니스를 통해서도 엄청난 돈을 벌었다.
언하트는 왕년의 레이싱 스타 리처드 패티 같은 선수들의 전성기가 지난 후, 미국전역에서 레이싱을 다시 한 번 대중화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이와 관련, 카레이싱 주관협회인 내스카(NASCAR) 영업부장 케빈 트리플렛은 이렇게 평가한다.
"언하트는 스톡카 세계의 기관차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스톡카 레이싱을 남부의 스포츠에서 미전역의 스포츠로 격상시킨 주인공이다"
스톡카는 주문 스포츠카가 아닌 일반차를 개조한 레이스카를 말한다.
언하트 패밀리는 3대에 걸친 카레이싱 집안으로 유명하다.
언하트는 어려서부터 스톡카 레이서였던 아버지 랠프 언하트로부터 운전 뿐 아니라 카레이싱 기술을 배우며 자라났다. 또, 그의 아들 언하트 주니어도 3대째 카레이서로서, 이번에 아버지가 죽은 데이토나 500 대회에서 2위로 골인했다.
원래, 캐롤라이나 주에서 시작된 스톡카 레이싱은 20세기 초반까지 별다른 대중적 인기를 끌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스톡카 레이싱은 술주정뱅이들이나 즐기는 레이싱이라는 인식이 강했었다. 레이서들 가운데 각종 사건에 연루되어 기소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침체의 스톡카 레이싱이 현대적 센세이션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진정한 영웅이 필요했다.
데일 언하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팬들은 언하트의 짙은 검정색 선글래스와 악당 구레나룻, 그리고 앞차를 무지막지하게 추월하는 과감무쌍한 레이싱 스타일에 매료되었다.
언하트와 레이싱을 같이 해 본 사람들은 모두, 그가 얼마나 집요하게 앞차를 추월했는지를 기억하고 있다.
레이싱 도중 한순간, 백미러에 검은 선글래스와 구레나룻을 한 언하트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윽고, 그는 앞차의 뒷범퍼를 추돌하기까지 접근했다가, 다음순간 앞차 옆으로 나란히 붙으면서 쏜살같이 추월해 나가곤 했다.
이로 인해 앞서 달린 차들의 뒷범퍼의 페인트가 긁히기 일쑤였다. 그에게 추월당해 본 레이서들은 하나같이 "언하트는 도저히 추월할 틈새가 없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도 틈을 만들어내곤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동료 레이서들이 붙여준 별명이 무쇠머리란 뜻의 ‘아이언 헤드’였다.
언하트는 앞차 뒷범퍼를 긁어놓고도 한번도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차가 추돌을 당했을 때도 상대방의 사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만일 언하트에게 사과를 요구했다면, 그는 ‘그게 바로 카레이싱이 아닌가’라고 대꾸했을 것이다"
한 레이서는 말한다.
언하트 자신도 몇 년전 한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레이싱 도중 한 번도 겁을 내본 적이 없다. 진정한 레이싱을 원한다면 속도를 줄일 수 없다. 우리는 카레이싱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하트의 홈타운 주민들은 아직도 그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언하트는 그를 에워싼 금속차체 보다 더 튼튼한 무쇠인간이라는 인식이 그들의 뇌리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제 홈타운 주민들은 언하트가 없는 카레이싱을 어떻게 볼지 난감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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