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과의 전쟁.

요즘 미국인들은 이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사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미국 전역에 서식중인 사슴은 총 2,500만마리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최고수준이다.

이로 인한 각종 피해도 심각한 지경이다.

해마다 미국에서 사슴과 충돌하는 차량이 무려 50만대가 넘고, 100여명의 운전자들이 사슴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부상자 숫자는 헤아릴 수도 없고, 자동차 피해손실액도 수백만달러에 달한다.

사슴충돌 사고는 특히 사슴들의 짝짓기가 절정기에 달하는 늦가을에 빈발한다.
이 밖에도, 사슴은 농작물은 물론 생태계를 해치며, 교외지역 주택들의 정원을 짓밟아 놓고 있다.
심각한 문제는 사슴서식지가 예전처럼 산속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슴들은 요즘 나무들과 잡목들이 뒤섞여 있는 곳, 다시 말하면 교외 주거지들이 사슴서식의 최적지로 부상하고 있다. 심지어, 도시외곽 지역에도 사슴이 심심챦게 출몰한다.

사슴떼가 폭증하다보니 살맛난 것은 사슴사냥꾼들이다.

사슴사냥꾼들을 대하는 교외지역 주민들의 태도도 최근 수년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제 사슴사냥꾼들은 영웅까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우호적인 친구로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야생동물보호 당국은 사슴숫자를 줄이기 위해 사슴사냥 시즌을 확대하고, 사냥꾼 1인당 사냥쿼터를 늘려주는 방안을 도입했다. 하지만, 사냥이 사슴숫자를 줄이는데 기여할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다.

"향후 몇년간 사슴사냥꾼들의 숫자는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야생생물학자인 코넬대학 폴 커티스 교수는 예측한다.

미국에 사슴이 처음부터 이렇게 많았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반만해도 미국에서는 흰꼬리 사슴을 구경하기 함들었다. 더구나, 한동안 무제한적 사냥이 허용되어 흰꼬리 사슴 숫자가 50만마리까지 줄어든 적도 있었다. 일부 주에서는 아예 멸종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치면서 흰꼬리 사슴 숫자는 다시 증가추세를 보였다.

처음에는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더니, 1990년대에 들어 폭발적인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 결과, 미국은 동부 해안지대로부터 서부 로키산맥에 이르기까지 흰꼬리 사슴의 천국이 되고 말았다.

전문가들이 꼽고 있는 사슴의 번식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슴은 사냥금지정책의 최대의 수혜자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반 이후 사슴사냥이 통제되었고, 특히 암사슴 사냥은 엄격히 금지됐다. 그 결과, 아직도 사냥꾼들은 암사슴 사냥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둘째, 주거지의 지속적인 팽창현상과 사유지 공시정책도 사슴팽창에 한몫을 했다. 즉, 주거지가 산림지까지 무한정 확대되면서 이들 지역에 대한 사냥이 불가능해졌다. 또한,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시키는 사유지 공시팻말로 인해 사슴들이 마음껏 서식하는 환경이 광범위하게 조성되었다.

셋째, 사슴은 다른 어느 동물 못지않게 번식기간이 빠르다. 암사슴은 2-3년만에 어미 사슴으로 성장하며, 전형적으로 해마다 쌍둥이를 낳는다. 또, 인간의 사냥이나 다른 동물의 위협을 벗어난 사슴들은 대개 3년이면 크기가 두 배로 불어난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슴의 신속한 번식력이 적자생존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즉, 늑대와 같은 약탈자들의 공격, 그리고 미국 북부지역의 겨울철 혹한으로 인한 높은 치사율에 반응하다보니 번식력이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겨울철 혹한은 사슴떼의 30% 이상을 줄어들게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슴은 인간들의 활동에 매우 잘 적응한다. 예를 들어, 사슴들은 주택개발로 인해 큰 나무들이 잘려나간 준산림지에서도 매우 잘 서식한다. 특히, 드문드문한 나무 사이로 잡목이 무성한 지역은 사슴서식에 안성마춤이다.

잡목숲이 사슴서식에 안성마춤이라면, 교외 주거지역은 그야말로 사슴서식의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잘 관리된 잔디밭과 정원은 사슴에게 최고의 먹이 제공처가 된다. 주변의 녹지대 수풀은 은신에 적합할 뿐 아니라, 교외 주거지에서는 사슴사냥 금지가 표준화되어 있다.

아직까지 사슴숫자를 줄이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총이나 활, 또는 덪을 이용한 사슴사냥을 늘이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사슴사냥 면허취득건수는 정체상태를 보여왔다. 사실, 현재 면허를 가진 사냥꾼들이 쿼터량 만큼만 사냥을 해주면 사슴숫자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사슴을 네 마리, 다섯 마리씩 사냥해서 어디에 쓰겠는가.

참고로, 현재 미국에서 사슴이 가장 많은 텍사스주에는 약 400만 마리의 사슴이 서식 중이고, 그 밖에 1백만 마리 이상이 서식중인 곳도 10여개 주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