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한국에선 2001학년도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 치러졌다.
교문 앞에서 하루종일 추위에 떨며 기다리는 어머니, 답안지를 앞에 놓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수험생 등 우리들에게 이러한 모습은 낯익다.
이곳에서도 오는 12월 2일부터 10일 사이에 4일동안 뉴욕 시에 세 곳뿐인 특수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8, 9학년 학생 4, 5만 명이 머리를 싸매고 입학 시험을 치르고 한인 학부모를 비롯, 수험생의 배 이상으로 많은 학부형들이 새벽부터 시험장 주변에 진을 칠 것이다.
일하는 엄마가 대부분인 미국의 학부형들도 한국의 부모 이상으로 고달프다.
오후에는 애프터 스쿨에 맡기더라도 새벽부터 서둘러 아이를 학교에 등교시킨 후 직장에 출근하는 부모들이 많다.
나 역시 아침 출근길에 큰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까지 10년째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직장으로 간다. 차로 데려다주는 부모,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서 교문 앞에 데려다 주고 버스를 타고 가는 부모 등 아침마다 만나는 얼굴들이 있다.
킨더 가든에 다니던 쌍둥이 여자아이가 6학년이 되자 어느새 훌쩍 키가 커서 자기네 엄마와 나란히 걸어가는 것을 보기도 하고 같은 버스, 같은 전철을 타는 학부모도 있다.
미국 학교는 아무리 찬 비가 오고 매서운 바람이 몰아쳐도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학교에 아이를 들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오는 순서대로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가 정해진 시간에 교사가 나와서 학교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러나 일 나가는 엄마 대부분은 아이가 학교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면 출근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그렇다고 회사에다 혼자만 출근시간을 10분 늦게 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
아이가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버스를 타거나 차를 출발시키면 5분내지 10분 지각을 한다. 그러자니 학교 앞에 아이는 수분간 혼자 있게 된다.
이곳에서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들은 다 알다시피 트립(Trip) 갈 때, 오전 수업만 있을 때, 심지어 바로 학교 옆에 있는 공원에 산책 가더라도 1주일 전에 학부모에게 통신문을 보내 부모의 허락 사인을 받는다.
학교는 자기 책임 분야를 철저하게 고수한다. 학교 문 밖은 부모의 책임 분야이다.
고학년인 아이인 경우는 별 걱정을 안하지만 저학년 아이를 둔 부모는 학교 앞에 아이를 두고 주차된 차로 가거나 버스 정류장으로 가며 단 1분이라도 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고자 한다. 그래서 뉴욕의 어머니는 뒤로 걷는다.
멀리 떨어져 보호해 줄 수도 없지만 혹시나 차도로 뛰어나가 다치지 않을까, 낯선 사람이 데려가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학교 앞에 멀쩡히 잘 서 있는 아이를 계속 쳐다보면서 걷는다.
뒤로 서너 발자국 걷다가 다시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 앞을 확인한 다음 다시 돌아 뒤로 걷는 아침, 아이가 잘 안보일 때까지 눈 아프게 지켜본다.
사실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돈을 벌면 얼마나 벌고, 잘 살면 얼마나 더 잘 살 것인가.
5년, 10년이 지나 그동안 무엇을 했나 돌이켜 보면 아이들이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난 것, 그것이 보람이고 기쁨이 아닌가.
이민 생활에서 이룬 것은 내 뒤를 이어 자라오고 있는, 나를 닮은 아이들인 것이다.
일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뒷바라지가 힘에 벅차지만 이때는 잠깐이고, 얼마후면 아이는 부모의 손을 떠나는 것을 보면 이 정도야 뭐 못할 것도 없다 싶은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얼마 전 첫 아기를 낳은 후배가 병원에서 퇴원하는데 담당 간호사가 “엔조이!”(Enjoy)하라고 말했다는 것이 참으로 신선하게 들렸다.
그래서, 오늘도 뉴욕의 어머니들은 기꺼이 뒤로 걷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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