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의 타고난 얼굴은 부모의 책임이지만, 40대 이후의 얼굴은 본인의 책임이라는 말이 있다. 얼굴에는 그 사람의 성장과정이 담겨있고, 생활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반영되며 그 사람의 성격과 인격이 그려져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목소리는 어떤가?

그동안 생활상담을 진행해 오면서 수없이 걸려오는 전화의 주인공들을 목소리를 통해서 만난다. 10대 학생의 여린 목소리, 20~30대의 젊은 여성들의 꾀꼬리같은 목소리, 굵직한 남성들의 허스키 목소리, 은쟁반 굴러가듯 매끈한 40대 여성의 목소리, 경륜과 무게가 있어 보이는 50대의 남성 목소리, 병색이 완연한 60대의 아픈 남, 녀 목소리, 건강하고 정정한 70대의 목소리 등등… 대개는 그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성격이 온유한 사람인지, 급한 사람인지, 교육수준이 있는 사람인지, 인내와 끈기가 있는지, 없는지, 아픈 사람인지 건강한 사람인지, 대강은 짐작이 간다.

어느 날인가 법률상담 중에 형사법을 방송하고 있었다. 특히 이민사회에서는 형사법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게되면 변호사의 절대적인 도움과 정확한 법률상식으로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날도 목소리 자체가 거칠고 굵직한 남성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듣다가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자 기술적으로 마이크 level을 살짝 낮춰 전화를 끊었더니 다시 전화를 걸어와 대짜고짜 하는 말이 “아줌마!! 왜 남이 이야기를 하는데 맘대로 전화를 끊어! 정말 이래도 되는거야!” 소리를 버럭 지른다. 현재 생방송으로 방송이 나가고 있는데… 나는 생전 방송중에 아줌마라는 소리는 처음 들었고, 한순간 갑자기 당한 무례함 때문에 그 당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서 마무리 지었는지 기억에 없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역시, 전화를 걸어온 상담자는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성미 때문에 형사사건에 연루되어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했던 분 같다.

그 이외에도 크고 작은 방송 에피소드는 말할 수 없이 많다.
방송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라디오 청취가 가능하고 TV시청이 가능한 지역에서 생활의 질을 높이고 이민생활의 즐거움과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해 새벽부터 뉴스, 생활정보, 교양, 오락, 시사, 종교프로그램을 들으며 하루를 지낸다. 또한 방송은 공중파를 통해 구석구석까지 공평하게 전달되는 대중매체로써 공정성과 신속성을 요구한다. 그런데 한 두사람이 듣는 것도 아니고 유일한 동포방송으로써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듣고 있는 방송을 통해 어떻게 개인 감정을 거리낌 없이 내뱉으며 야단치고 교훈하며 장난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따끔하게 충고하고, 더 나은 방송을 위해 차근차근 가르쳐주고 일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한인이민자들은 생활의 어려움을 느낀다. 또한 해답을 얻기 위해 힘들게 전화 다이얼을 돌린다. 다른 사람의 질문을 통해 나의 문제를 풀어 나간다. 그런데 가끔씩 황당한 사람들의 무례한 목소리 때문에 진행자가 당황하고, 출연자가 할 말을 잊고 쩔쩔매며, 듣는 청취자와 시청자가 불쾌감을 느낀다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다.

아직까지는 성숙되지 못한 방송 참여에 대한 아쉬움이 크지만 듣는 사람, 보는 사람, 말하는 사람,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방송 에티켓을 지켜준다면 더욱 성숙된 이민사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황당한 사람들의 무례한 목소리가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