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뉴스의 폭풍 속에 살고있다.
세계 역사를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미대통령 선거가 혼전을 빚고 있고 지난 10월에는 월드 시리즈에 뉴욕의 두 팀이 맞붙어 전세계인의 관심을 모으더니 힐러리 클린턴이 뉴욕 상원의원에 출마, 당선되며 뉴욕 유명세를 더욱 가세했다.
본국에서도 의약분업, 전교조, 기업가와 공직자간의 부패 고리, 끝이 안보이는 여야의 싸움, 퇴출기업 명단 발표, 대량해고·퇴직할 최소 5만여명의 샐러리맨 등등… 서로간에 갈등과 불신의 늪은 깊어만 가고있다.
한국은 요즘, 정치·경제, 사회 전반에 ‘한탕으로 모든 것을 끝낸다’, ‘큰소리치면 이긴다’, ‘시침떼면 해결된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명감, 의리 모두 던질 수 있다’는 것으로 충만 되어 있는 것 같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숨가쁘게 돌아가는 뉴스 속에 있으면 참으로 어지럽다.
천지사방이 이럴 때, 어떤 한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려한다. 그는 나를 전혀 몰라도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
95년도인가 10개월 정도 출근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 집을 나선 적이 있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메인 스트릿에 내려 1분 거리인 7번 종점에 가려면 잡화가게 앞을 지나야 했다. 시간이 일러서 그 가게는 늘 셔터가 육중하게 내려져 있었다. 날이 채 밝지 않은 신새벽에 버스에서 내리면 그 앞에 늘 서있는 한 40대 동양인이 있었다.
찬바람에 코끝이 빨갛게 어느 날에도, 펑펑 눈이 내리는 날에도 국방색 점퍼 차림으로 꼼짝 않고 서있었다.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서있는 그를 매일 아침 보면서 처음엔, 주인인가? 열쇠를 안 갖고 왔나? 밤새 가게 지키는 경비인가? 하는 여러 생각들을 했다.
어느 날 보니 손에 까만 한자가 인쇄된 빨간 비닐 봉지를 들고 있는데 봉지 입구로 삐죽 나온 보온 물병과 도시락이 보였다.
해가 솟지 않아 다소 어두운 길을 지키던 그는 겨울이 다 가고 봄날이 지나고 여름이 되어 거리가 훤한 날에도 그 앞에 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주말, 그 가게 앞을 지나다 그를 발견했다. 주인은 따로 있고 머리띠, 헤어 핀, 양말 등 각종 잡화용품이 가득한 진열대를 총채로 열심히 털고 정리하는 그는 그 잡화점 점원이었다.
주인이 오기 훨씬 전부터, 다른 종업원은 아무도 오지 않는 시간에 다리 아프도록 문도 열지 않은 가게 앞에 서있는 그에게서 내가 본 것은 주인을 향한 충성심, 일터에 대한 애사심, 그런 것이 아닌 한 개인의 성실성이었다.
늘 입고있던 국방색 점퍼는 반질반질할 정도로 남루한 차림새였지만 그는 참으로 빛나는 생을 살고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많은 돈을 벌진 못해도 책임감 있는 가장, 환한 불빛아래 소찬이지만 가족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자상한 아버지 등등, 그는 인생의 참 맛을 알고 누리는 사람으로 상상되었다.
태산이 무너져도, 천둥 번개가 내리쳐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사람, 푸른 절개를 지키는 사람이 그리운 요즘, 불과 한달 전에도 그가 여전히 그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보았다.
과거에는 성실한 사람은 많으나 특출한 능력을 가진 자가 드물었으나 요즘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너무 많고 성실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묵묵히 제 위치를 지키는 사람, 거짓없이 참되게 사는 자들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을 준다. 한인사회에도 한 구석에서 소리 없이, 흔적 없이, 빛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 한인들이 많다.
앞에 나서지 않고 눈에 띄지 않지만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성실한 한 사람이 대다수일 때 그 단체는, 그 나라는 어떤 위기라도 극복할 수 있다. 또 미국 대통령이 세계적인 지도자로 역사를 끌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지도자는 이들 ‘성실한 한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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