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거 때나 마찬가지로 두 정당의 대통령후보의 우열을 예측하기 어려웠던 이번 투표날도 평소나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거리의 행인들은 일상생활의 발길이 분주했고 직장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했다. 다만 각 지역에 설치된 투표소의 건물 안에서 볼 수 있는 투표자들의 투표하는 모습만이 이 날이 선거날이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교회나 학교 강당 등 공공건물 안에 마련된 투표소에는 천으로 칸막이를 치고 그 안에 투표기를 설치해 놓고 있었다. 투표자의 명단을 확인하는 선거요원은 대부분 노인들인지라 말소리마저 조용하여 선거날 투표장에서 들어오던 고성이나 언쟁등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투표현장에는 경찰관이 한 명씩 배치되었지만 공권력을 행사할 일이 생길 수 없었다. 투표당일 안내전화도 설치되고 연방검사가 투표에 대한 불평을 접수하고 FBI가 선거사범에 대한 고발을 받지만 모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것이지 실제로 그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후유증이 없어서 좋은 것이 미국선거이다. 부정선거다, 또는 개표 부정이다고 하는 말썽은 없다. 어느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해서 당장 공무원 자리를 싹쓸이하지 않으니 공직자들의 걱정이 그만큼 적다. 더우기 대통령이 되지 못한 낙선자가 탄압을 받거나 낙선자를 지원했던 기업가가 세무사찰을 받아서 곤경에 처하는 경우도 없다. 선거 때문에 잘되는 사람은 있어도 망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한국의 선거는 아직도 그렇지 못하다. 선거운동을 하는 정치인들이나 그 주변사람들은 직업이 정치니까 선거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누구나 자기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리라. 그러나 왜 온 국민이 선거 때문에 난리일까. 선거 때문에 택시 기사와 승객이 싸우고 식당주인과 고객이 싸우는가 하면 절친한 술친구끼리 주먹다짐을 하는 일도 한국에서는 선거 때 나타나는 풍경이니 말이다. 그런 선거에서 투표날을 조용히 넘어갈 수가 없고 그 후유증이 없을 수가 없다.
한국의 선거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사람이 하는 선거는 모두 그런 것 같다. 학생들이 뽑는 회장선거에서부터 어떤 단체의 선거도 잡음 없이 되는 때가 별로 없다. 심지어는 종교인들까지 선거 때는 추태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불교종단의 선거 때마다 그런 일을 볼 수 있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한 교회기관의 선거에서 회장을 둘러싸고 소송이 벌어졌는데 장내의 평온을 되찾기 위해 기도를 하자는 긴급동의가 있었다. 그래서 참석자들이 모두 눈을 감고 기도를 했는데 「아멘」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고성이 오간 적도 있었다.
한국사람들이 시끄러운 것은 선거 뿐이 아니다. 국회에서도 고성은 예사이며 쌍소리와 주먹다짐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사를 표시하는 시위도 한국에서 패싸움이나 시가전으로 격상되어 있다. 너도 나도 목소리를 크게 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게 된다. 큰 목소리로 작은 목소리를 눌러버리는 논리만 판을 치게 된다.
미국에서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해서 임기중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이 정책의 주도권을 쥐고 국가를 이끌어 나가지만 의회라는 제동이 있고 최종적으로 여론이라는 제동에 걸리지 않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렇게 대통령이 눈치를 보는 여론이라는 것도 시끌벅적한 소란이 아니다. 아주 조용하고 평온한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그대로 여론이다.
미국이라는 한 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이렇게 소리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기까지 하다. 마치 막강한 힘을 가진 항공모함이 엔진소리도 없이 대양의 물살을 가르는 듯한 위용이라고나 할까. 바로 이것이 미국의 위대함이라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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