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나성한인교회
▶ 록 음악아닌 기독교 찬양으로 불우이웃돕기 콘서트
’록가수, 시카고 억순이, 경제사범, 오뚜기’
70년대중반 유명 록그룹 ‘서울 패밀리’ 리드 싱어로 활동했던 박명화씨를 붙어 다니던 별명들이다. 유명세, 여한없이 벌어본 돈, 억울한 누명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의 인생을 설명해주는 이름들이다.
그가 21일 오후7시 나성한인교회에서 불우이웃돕기 콘서트를 갖는다. 이번에는 록이 아닌 기독교 찬양으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또 다른 소명으로 쓰기 위해서.
90년대 초반까지 틈틈이 록가수로 활동하던 박씨는 LA로 옮겨온 후 7년동안 두문불출하며 사실상 음악활동을 중단했었다. 그런 그가 다시 기타를 잡게 것은 요즘에야 깨닫게된 ‘주님의 매질’ 때문이란다.
79년 한국문화 사절로 미국을 방문했다가 시애틀에 정착한 박씨는 공부하던 남편을 만나 시카고서 다복한 결혼생활을 꾸며갔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뿐. 멀쩡하던 남편이 장파열로 죽게된다. 어린 두딸을 데리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프리마켓에 나가 텐트도 없이 장사하며 억척스럽게 돈도 벌었지만 89년 가짜 구찌 파동으로 연방 교도소에 9개월간 수감되는 모진 경험도 했다.
박명화씨는 수감중 자신의 굴곡 심한 인생을 노래한 ‘야생초’등 8곡을 작곡해 91년 독집 앨범을 출간하면서 시카고서 대규모 록 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또 이듬해 1세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내 저자권 등록을 마치고 미국 작곡가 협회원이 됐다.
그러나 록음악의 명성도 그의 가슴을 채워주지는 못했고 어머니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해서도 한구석에 남아있는 빈 공간은 좀처럼 메꿀수가 없었다.
"몇날을 기도해 응답을 받았다"는 그는 "쓰임을 받는대로 기타를 들었다"며 외할아버지의 유지대로 고향 송광에 개척교회를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본보가 후원하는 이번 찬양 콘서트에는 박명화씨가 주축이 된 삼위일체 찬양선교단과 물댄동산 찬양팀, 수화 찬양팀, 생수의강 선교교회 찬양팀과 색서폰 연주자 정창균씨, 서양훈씨, 한혜정씨, 최춘섭, 남석훈씨등이 함께 공연한다.
주소 2241 N. Eastern Ave., LA (323)221-9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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