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영화사 출신 수장 4명 영입… 1년간 6억6천달러 투자 약정
▶ 세계 2위 영화시장 “대작 만들자”… 돈가뭄 할리웃에 반가운 단비
■ 왕서방, 할리웃에 거액 투자
최근 개봉된 영화 ‘사우스 포’에겐 든든한 뒷배가 있다. 중국 재벌 달리언 완다 코퍼레이션(Dalian Wanda Corp.)이 왼손잡이 복서인 사우스 포의 듬직한 세컨드다.
요즘 잘 나가는 스타 제이크 질렌할이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에 달리언 완다는 3,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제작비를 전담한 셈이다.
제작과 배급을 맡은 ‘와인스타인 Co.’가 판촉경비로 3,500만달러를 투입하게 되며 흥행수입은 두 회사가 양분한다는 것이 계약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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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웃의 왕서방’은 통 큰 투자자일 뿐 아니라 꼼꼼한 관찰자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배우려 든다. 본전을 뽑고야 말겠다는 각오와 결의가 대단하다.
와인스타인의 데이빗 글래서 사장은 “세트장에는 어딜 가나 중국 영화관계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영화제작, 편집, 마케팅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노하우를 배우려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와인스타인은 무례에 가까운 이들의 ‘견학’을 눈감아 주는 대신에 중국 정부로부터 외화 배급권을 따내는데 달리언 완다가 앞장서 줄 것을 기대한다.
중국 정부 당국이 정한 해외영화 수입쿼타는 연간 총 34편.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숫자다.
중국시장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상태에서 작품성 하나를 앞세워 치고 들어가기에는 바늘 귀 만큼이나 ‘좁은 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들어 중국기업들이 할리웃의 영화제작 기법을 전수받기 위해 택한 다양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투자 참여다.
지난 1년간 주요 영화사와 제작사의 전직 수장 4명은 중국인 투자자들이 후원하는 스튜디오를 창업해 대표직에 올랐다.
이들 4명이 단 1년만에 중국으로부터 끌어들인 투자 약정액은 무려 6억6,000만달러. 이 정도면 돈 가뭄에 허덕이는 할리웃에서 중국인 투자자들이 ‘대형’ 행세를 할만하다.
중국인들은 오락산업과 기술산업 등 미국의 전 산업분야를 상대로 활발한 투자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돈만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글로벌 리더로 자리 잡지 못한 분야에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경험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공동의 목표다. 원하는 자리에 우뚝 서기 위해 몸을 굽히는 ‘굴기’의 자세다.
엔터테인먼트 재정문제에 포커스를 맞춘 법률회사 호간 러벨스의 파트너인 셰리 제프리는 “세계 영화시장에서 중국은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나라이자 어마어마한 자원의 원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막강한 노하우를 갖춘 할리웃과 합쳐 완전체로 거듭날 최적의 파트너 조건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몇 년간 할리웃에 밀어닥친 창업 물결은 유례없는 것이었다. ‘모’ 아니면 ‘도’인 영화판에 거대한 젖줄이 흘러들 것이라는 신호가 포착된 것 역시 처음있는 일이었다.
사실 새로 태어난 신생 영화사들은 손에 쥔 것이 거의 없다.
다른 대형 영화사들처럼 후속작품 제작을 가능케 해주는 흥행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도 아니고, 널리 알려진 만화책 주인공 같은 지적 재산을 보유한 것도 아니다.
마치 요술처럼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 그들이 가진 영화 만드는 재능에 의존해 히트작을 내놓아야만 생존의 교두보를 만들 수 있다.
물론 말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통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드림웍스 SKG의 현재 모습은 그와 파트너들이 1994년 창업 당시 꿈꾸었던 주요 스튜디오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젠 그저 환상의 빈 그림자에 불과하다.
영화판의 최고 고수들이 합작한 드림웍스가 이럴진대 요즘 쏟아져 나오는 할리웃 창업사들의 형편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영화사 한 개를 제대로 띄우기 위해선 수억달러의 자금이 뒷받침돼야 한다. 게다가 가치 있는 성공적인 스튜디오로 키우려면 최소한 10년에 가까운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통적인 투자원들은 신속한 자금회수를 원한다. 이 바닥에서 장시간 인내하며 결실을 기다란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월트 디즈니 영화 제작부를 이끌다가 입사 38년만인 지난 2009년 해고된 딕 쿡은 지난 5년을 자신의 오락창투사 계획을 마련하는데 사용했다.
5개월 간의 밀고 당기는 회담과 협상 끝에 그는 중국 재벌인 ‘시틱 구오안 그룹’(Citic Guoan Group Co. Ltd.)으로부터 1억5,000만달러의 투자금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쿡은 현재 다른 투자원들과도 상담을 진행 중이고 일부 성과도 거뒀다고 말했지만 명단공개는 거부했다.
중국은 투자이윤을 공유하는 것만이 자본 참여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 중국 정부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원천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험을 쌓은 베테런들로부터 생생한 층고를 듣고 싶어 한다.
중국은 세계 2위의 영화시장이지만 흥행 대작을 연속적으로 찍어내는 할리웃과 달리 자체적인 히트작을 단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주요 스튜디오를 이끌던 노장들과 연합은 바로 이런 상황에 변화를 주기 위한 수단으로 풀이된다.
중국 메리디안 엔터테인먼트의 최고경영자인 제니퍼 동은 “미국의 숙련된 업계 중역들로부터 몇 수 지도를 받고 싶은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컴캐스트 소속 영화사인 포커스 피처스의 전직 사장인 제임스 샤무스가 만드는 영화에 돈을 대기로 합의했다며 “제임스의 통찰력을 필요로 할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투자로 이익을 보고 있는 미국의 산업체는 영화계만이 아니다. 실리콘밸리 또한 태평양을 건너오는 중국의 대대적인 자본공세에 직면한 상태다.
한 예로 중국의 초대형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그룹 홀딩’은 실리콘밸리 기술업체인 스냅챗(Snapchat Inc.)에 2억달러를 투자했다.
중국 자본은 아주 적절한 시간을 택해 물밀 듯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주요 영화사들이 찍어내는 작품 수는 10년 전에 비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제작비는 점점 올라가는데 돈가뭄까지 겹쳐 허덕이는 할리웃에 중국이 그야말로 시의적절한 투자의 단비를 뿌리고 있는 셈이다.
딕 쿡의 스튜디오는 가족용 활극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컴퓨터 합성 만화영화라든지 PG-13 수퍼히어로 영화상영관으로 데려가면서 최근 몇 년간 사실상 버려졌던 장르다.
2013년까지 타임워너의 영화 사업부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 사장이었던 제프 로비노프는 지난해 중국의 포선 그룹(Fosun Group)으로부터 2억달러의 자금을 유치하는 개가를 올렸다.
로비노프의 ‘스튜디오 8’은 만화책이라든지, 청소년 소설에 바탕을 둔 영화가 아니라 세계를 누비는 대작영화를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의 영화는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에 의해 배급된다.
쿡과 로비노프가 새로운 글로벌 스튜디오를 세우기 위한 첫 발자국을 떼어놓았다면 STX 엔터테인먼트는 중간가 예산 영화를 제작하고, 홍보하고 국내시장을 통해 공개하는 등 다른 신생 경쟁사들에 비해 한 발자국 앞서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가예산 영화도 주요 영화사들이 외면하는 틈새시장이다. 이름난 영화사들은 어마어마한 예산을 퍼부어 거창한 대작에 도전하거나 아니면 저가 코미디 영화로 눈길을 돌린다.
저가 코미디 영화는 확실한 고정 팬을 거느리고 있는 반면 어중간한 중간예산으로는 확실한 그림을 그려내기 힘들다. 자칫 이도 저도 아닌 ‘맹꽁이 탕’이 되기 십상이다.
STX의 모션 픽처그룹은 전 유니버설 픽처스 회장인 아담 포젤슨이 이끌고 있다.
포젤슨은 “유니버설에서 퇴출당한 후 나 정도의 식견을 지닌 중역들이 전통적인 스튜디오 밖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이전에 비해 훨씬 많아진 사실을 깨닫고 상당히 놀랐다”고 말했다.
STX 투자자들 가운데는 중국 사모투자사 허니 캐피털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향후 3년간 STX가 찍을 영화의 총 제작경비 중 25%는 중국 화이 브라더스가 담당한다. 화이 브라더스 미디어 그룹(Huayi Bros. Media Corp.)은 이전에 스튜디오 8을 지원할 계획이었지만 막판에 진로를 변경했다.
‘사우스 포’는 완다가 투자를 한 첫 번째 미국영화다. 하지만 이에 앞서 완다는 2012년 27억5,000만달러에 미국 2위의 극장 체인 AMC 엔터테인먼트 홀딩스를 인수했다.
한편 미국의 배급사 ‘라이언스 게이트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3월 ‘후난 TV & 브로드캐스트 인터미디어리’와 3억7,500만 달러상당의 영화 재정지원 거래를 체결했다.
국가의 뒷받침을 받는 ‘차이나 필름 그룹’(China Film Group)은 지난 4월 유니버설의 히트작인 ‘퓨어리어스 7’(Furious 7)과 최근 소니가 개봉한 ‘픽셀스’(Pixels)에도 소액 투자를 했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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