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상통화로 작업 - 여유 즐기고 효율성 ↑... 공식 휴가일수 유지
▶ ■ 워케이션의 단점 - 업무 성격따라 불가능 “휴가도 아니고…” 불만
[휴가 못 쓰는 직장인에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
미국의 직장인들은 휴가를 쓰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구글이 1,500명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비자 서베이에 따르면 지난해 휴가를 단 하루도 사용하지 않은 미국인 근로자가 전체의 4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보통신(IT)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직장이라는 고정된 공간개념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일과 휴식을 절충한 이른바 워케이션(worcation)이 정기휴가를 대체할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워케이션은 일과 휴가에 해당하는 work과 vacation이라는 2개의 영어단어를 한데 뭉뚱그려 만든 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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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셜리 블룸필드는 델라웨어의 비치하우스에서 1주를 보냈다. 낮에는 남편과 함께 애견을 데리고 해변을 거닐었고,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는 렌탈 홈의 벽난로 앞에 앉아 마시멜로를 구워먹었다.
그러나 이들은 휴가를 즐긴 게 아니었다.
지방 장거리 통신사협회인 NTCA의 최고경영자인 셜리는 번잡한 워싱턴 DC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었지만 빡빡한 업무 스케줄로 휴가원을 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생각 끝에 그녀는 가족과 함께 DC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워케이션을 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의 전문직 종사자들 가운데 휴가라는 명목으로 사무실과 연락을 완전히 끊고 잠수를 타는 간 큰 봉급쟁이는 극히 드물다.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행여 상사의 눈 밖에 날까 불안스럽기도 하다. 휴가를 갔다 와서 밀린 일거리를 처리하는 것 역시 스트레스다.
휴가 중인 부하 직원에게 이메일이나 전화를 걸어 갑질을 해대는 얄미운 보스들도 적지 않다.
적어도 휴가에 관한 한 법도 노동자들의 편이 아니다. 미국의 노동법에는 종업원들에 대한 의무적 휴가조항이 담겨 있지 않다. 관련 내규를 두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경영주의 ‘고유권한’에 속한다.
이런 상황에서 워케이션은 고용주와 피고용인 모두에게 매력적인 절충안이 될 수 있다.
고용주가 워케이션을 허락할 경우 근로자들은 자비로 마련한 휴양지 숙소에서 업무에 필요한 화상통화를 하거나 프로젝트 중간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평소와 같이 일한다.
다만 긴급하고 필요불가결한 업무를 처리한 후의 남는 시간은 가족과 함께 관광을 하거나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데 사용한다.
대부분의 경우 워케이션은 휴가로 간주되지 않는다. 물론 명목뿐일 수 있겠지만 워케이션을 했다 하더라도 공식 휴가 일수는 그대로 유지된다.
미국여행업협회의 집계를 보면 미국인들은 10년 전보다 휴가에 인색해졌다.
2013년 전체 미국인 근로자들의 평균 휴가 일수는 16일이었다. 반면 2000년도에는 20.9일을 썼다.
매니지먼트 전문가들은 휴가다운 휴가를 갖지 못한 근로자들이 탈진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모든 보스들이 워케이션이라는 대안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탄력근무제를 도입하지 않았다든지 업무의 성격상 원거리 근무가 적합지 않은 직장의 보스일수록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미국 내 기업의 약 3분의 2는 경우에 따라서 직원들에게 텔리커뮤팅, 즉 재택근무를 허용한다. 2008년도의 50%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워케이션의 기반구조가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는 셈이다.
테크놀러지 배급사인 아브넷의 최고경영자(CEO) 릭 하마다는 텔리커뮤팅과 같은 ‘창조적 아이디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워케이션이 누구에게나 다 맞는 대안은 아니다”고 깎아내린다. 하긴 텍사스가 담당구역인 세일즈맨이 프랑스에서 워케이션을 하겠다고 한다면 고용주로선 어이가 없을 것이다.
피츠버그 경영대학에서 인력관리를 강의하는 데보라 굿은 일부 기업들이 종업원들에 대한 특혜로 워킹 베이케이션을 허용하기 시작했다며 여기에 사용된 시간을 정식 휴가일수에서 제하지 않는 것이 전반적인 추세라고 밝혔다.
굿윌은 “처음에야 다들 워케이션을 감지덕지하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종업원들 사이에서 진짜 휴가다운 휴가를 즐기지 못한다는 불만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워케이션이 뜨는 것은 일에 대한 미국인들의 집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근로자들은 그들이 없어도 직장은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우치지 못한다.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휴가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민간그룹 ‘Take Back Your Time’의 사장인 존 디 그라프는 워케이션이란 전자 줄을 직원들의 목에 매달아 놓는 것과 같아서 진정한 의미의 휴식이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워케이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뿐더러 사무실에 정시에 출근해 타임카드를 찍는 것보다는 비치에서 컴퓨터에 로그온하는 것이 훨씬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고 덧붙였다.
NTCA 최고경영자인 셜리는 델라웨어 여행이 즐겁긴 했지만 진짜 휴가에서 맛 볼 수 있는 여유를 만끽하지는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워케이션이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원거리 근무자’에게 공유 작업공간을 제공하는 코-워킹(co-working) 회사들이 레익 타호, 캐너리 군도 등 인기 휴양지에 Wi-Fi 시설을 갖춘 사무실을 속속 오픈하고 있다.
이들 중 하나인 ‘타호 마운틴 랩’의 창업주인 제이미 오르는 고객의 25%가 스키를 타거나 하이킹 하는 사이사이에 직장업무를 수행하려는 워케이셔너들이라고 말했다.
빌 레이몬드에게는 디즈니 월드가 이상적인 워케이션 장소였다. 레이몬드는 와이프와 함께 보스턴의 집을 떠나 플로리다주 올란도로 날아가 디즈니 월드의 테마공원을 관광하며 2~3일을 보냈다.
일단 휴식을 취한 이들은 다음 이틀간 랩탑을 들여다보며 회사의 평일 스케줄에 맞춰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았다. 풀에 앉아 전화로 세일즈 상담에도 응했다.
기업 검색업체 보이저 서치의 솔류션 아키텍트로 근무하는 그는 워케이션 기간에 개인 블로그에 ‘디즈니 월드에서 생산적인 워케이셔너가 되는 법’이라는 글을 띄웠다.
디즈니 월드에서 방해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공간도 소개했다. 예를 들어 디즈니 포트 올리언스 프렌치 쿼터는 “어린애처럼 구는 아이들에 치일 염려가 별로 없다.”보이저의 최고경영자이자 레이몬드의 보스인 브라이언 골딘은 워케이션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사무실 환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커리어 어드바이스 사이트인 ‘더 뮤즈’의 편집장 아드리안 그랜젤라(32)는 남편과 도미니카공화국과 푸에르토리코로 지난 2년간 각각 1주일 기한의 워케이션을 두 차례 떠났다.
처음에는 1주일간 사무실을 떠나는 것이 무책임한 행동같이 느껴졌다. 워케이션을 시작하기 전에 아드리안은 목적지의 숙소에 Wi-Fi 시스템이 완벽히 갖추어져 있는지, 인터넷 접속상태는 양호한지를 점검했다.
워킹 베이케이션은 만족스러웠다. 인터넷을 이용한 원거리 근무는 업무수행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았다.
예정에 없던 회의에 끌려들어갈 필요가 없어서인지 작업 생산성은 오히려 개선됐다. 해변에 앉아 있으면서도 사무실과 완전접속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커리어 전문가들은 보스로부터 워케이션 승인을 얻어내려면 이로 인해 회사에 돌아갈 혜택을 강조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조언한다.
또 상사와 직장 동료들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언제 어떻게 일하고, 언제 오프라인 모드로 들어갈 것인지를 미리 확실하게 해두어야 한다.
샬리와 변호사인 그녀의 남편은 함께 쉬는 시간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근무표를 작성했다.
컨퍼런스 콜 스케줄을 해변 숙소의 키친 테이블 위에 놓아두어 같은 시간대에 두 부부가 모두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150명의 사무실 직원들에게는 “워케이션 기간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을 것이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가능하다”고 말해 두었다.
샬리는 “실제로 전화가 왔을 때 해변에서 엄지발가락을 물에 담그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쨌건 단 한 번도 통화를 놓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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