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같은 김치 냄새!(It all smells like fucking kimchi!)" ‘퍼킹 김치(fucking kimchi)’, 모든 건 이 두 단어 때문이다. ‘f’ 발음에 주의하며 내뱉어도 채 1초가 걸리지 않는 이 대사 탓에 7140초짜리 ‘버드맨’(감독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은 제87회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본상·촬영상을 받은 최고의 영화에서 순식간에 인종차별 영화가 됐다.
‘버드맨’이 개봉도 하기 전(3월5일 개봉)에 기소당하고, 즉결 심판에 넘겨져 아카데미 시상식 종료 단 하루 만에 ‘나쁜’ 영화로 낙인 찍힌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의 대표 음식인 김치를 비하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 사람들, 나아가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한국 남자를 김치맨으로, 한국 여자는 김치녀로, 한국은 김치 국(國)으로 부르는 무한한 김치 사랑으로 기분이 나쁘다는 말이다.
‘버드맨’은 정말 김치와 한국 사람과 한국을 모욕했을까. 그래서 인종차별영화이고, ‘X 같은 영화(fucking movie)’일까.
영화는 일반적으로 각 캐릭터에 대한 기본 정보를 관객에게 제공하는 시퀀스가 있다. ‘버드맨’은 사건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다. ‘리건 톰슨’(마이클 키턴)이라는 퇴물 배우, 리건 톰슨이라는 인간에 대한 영화다. 러닝타임은 리건 톰슨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탐구 시간이다. 톰슨을 설명하기 위해 따로 특정 장면을 삽입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톰슨의 딸 샘(엠마 스톤)은 주변 인물이어서 이 사람이 어떤 캐릭터인지 단번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 문제의 ‘김치 냄새 발언’이 나오는 그 장면이다.
이냐리투 감독은 샘을 마약을 했다가 막 재활원에서 나온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인물로 설정했다. 한 가지 더, 샘은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게 큰 불만인 딸이다. 톰슨은 이런 딸에게 꽃을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그런데 그게 마침 한국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꽃집이다.
꽃집에서 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하는, ‘약쟁이에서 막 탈출한’ 샘은 통화 내내 아버지 톰슨을 비웃고 빈정거린다. “여긴 전부 X 같은 김치 냄새만 난다고!" “당신(your) 비서 짓거리 하기 진절머리나!" 샘은 아버지를 ‘당신’이라고 부른다.
샘이 어떤 인물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동시에 왕년에 잘 나간 배우였던 톰슨이 딸에게조차 무시당하는 사람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냐리투 감독은 샘의 ‘김치 발언’으로 김치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한국인을 욕보이려는 게 아니라 샘이라는 인간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히스테릭한 인물인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감독은 오히려 김치 냄새가 아닌 ‘저런 발언’도 서슴지 않는 샘을 비웃는다고 이해하는 게 더 합당하다. 이 맥락에서 갑자기 샘이 김치를 모독한다?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지적이다.
샘은 중요 인물이 아니다. 그런 존재인 샘의 입에서 별 의미 없는 대사에 굳이 ‘김치’를 집어넣었다는 걸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영화를 제대로 봤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샘의 과격하고 걸러지지 않은 발언은 주인공 톰슨이 자기 자신을 자각하게 하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샘의 이 대사를 보자. “세상은 아빠를 벌써 잊어버렸다고! 아빠가 대체 누군데? 블로그, 트위터를 싫어하고 페이스북도 안 하잖아. 아빠는 존재가 없다고!" 샘의 이 거친 언행은 영화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샘은 톰슨을 객관적으로 본다. 톰슨의 허황한 자기애는 샘의 말을 통해 서서히 무너진다. 이래도 샘이 중요하지 않은가.
이렇게도 묻는다. 왜 하필 김치가 거기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 물음에 대해서는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 조연상, 음향상, 편집상 등 3개 부문에서 오스카를 거머쥔 ‘위플래시’는 완벽한 연주를 위해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을 그린다. 그렇다면 ‘위플래시’는 음대생 학대 영화인가? 각본상 후보에 올랐던 ‘나이트 크롤러’에는 LA 한인 타운이 특정 사고 현장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LA 한인 타운을 사건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 비하하는 영화인가?
여우조연상을 받은 ‘보이후드’에는 주인공 메이슨 주니어가 아버지를 따라 오바마 대통령 후보자 지지 팻말을 여기저기 꽂고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보이후드’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정치영화인가?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폭스캐처’의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른 존 듀폰이라는 재벌이다. 영화는 그의 살인을 다룬다. 그렇다면 ‘폭스캐처’는 과거 일을 괜히 들춰내 듀폰 가문을 모욕하는 영화인가?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은 작품상을 받은 뒤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통해서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 사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평등하게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이냐리투 감독은 멕시코 출신이다.
문화는, 예술은, 영화는 결국 한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그 영역 안에서만 존재할 수 없다. 사회·경제·정치와 연결돼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게 예술의 매력이고 존재 의미이기도 하다. 하나의 큰 덩어리로써 완성되는 예술 일부분을 꼬투리 잡아 의도적으로 잘못 읽고, 평가절하하거나 과대포장 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버드맨’ 김치 논란을 보면서 김추자의 노래 ‘거짓말이야’가 사회 불신조장을 이유로 금지곡 처분을 받았던 과거를 떠올린 건 과한 생각일까. 아직 우리 사회 일부는 ‘버드맨’이라는 뛰어난 영상 예술을 즐길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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