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물가 시대 미 경제 어디로 가나
▶ 베스 앤 보비노 US뱅크 수석 이코노미스트
▶ 올해 경제 성장률 2.3% 성장할 것 전망
▶ 고유가·트럼프 관세가 물가 압력 자극
▶ 연준, 연말까지 기준금리 동결에 무게
▶ 소비는 아직 버티지만 저축 여력 약화

미국 경제가 중동 전쟁과 치솟는 개솔린 등 각종 악재에도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소비자와 기업들은 고물가, 비용 증가, 매출 부진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로이터]
미국 경제가 여전히 회복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고유가와 관세발 물가 압력, 약해지는 가계 저축 여력으로 인해 점점 더 제약받는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US뱅크 경제연구그룹은 최근 발표한 미국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미국 경제는 회복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높은 가격과 얇아지는 완충장치에 점점 더 제약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올해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기보다는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봤지만, 소비자와 기업이 체감하는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베스 앤 보비노 US뱅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미국 경제의 기본 흐름을 “경기침체가 아닌 정상화의 지속”으로 규정했다. 성장률은 둔화되지만 플러스 성장은 유지되고, 노동시장은 급격한 붕괴 대신 방어적 안정 상태를 보이며, 인플레이션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점진적으로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US뱅크는 올해 미국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4분기 대비 기준 2.2%, 연평균 기준 2.3%로 전망했다. 고유가와 물가 상승이 실질 구매력을 압박하면서 소비 증가세는 둔화되겠지만, 인공지능(AI) 관련 투자와 생산성 향상, 정부 지출 반등이 경기 확장을 떠받칠 것으로 봤다.
보비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성장은 보다 지속 가능한 속도로 둔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경제가 과열 국면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민간 부문의 기초 수요는 아직 건설적이라는 것이다. 다만 소비자들이 임금 증가보다 저축 인출과 가계 재무 유연성에 기대어 지출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향후 부담 요인으로 지목됐다.
가장 큰 변수는 에너지 가격이다. 그는 최근의 에너지 충격이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고 실질소득을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유가 상승은 개솔린 가격을 통해 소비자 지갑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US뱅크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10달러 오를 때마다 개솔린 가격은 갤런당 약 25센트 상승한다고 강조했다. 중동전쟁 이전보다 유가가 30달러 이상 오른 상황에서는 이 부담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보비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특히 저소득층이 에너지 가격 상승에 더 취약하다고 봤다. 그에 따르면 평균적인 미국 근로자는 한 달 출퇴근에 필요한 개솔린 비용을 벌기 위해 약 5시간을 일해야 하지만, 저임금 근로자는 거의 11시간을 일해야 한다. 반면 고임금 근로자는 2시간 미만의 노동으로 같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 고유가가 단순한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소득 계층별 소비 격차를 키우는 요인이라는 의미다.
보고서는 “개솔린 지출이 늘어나면 재량소비에 쓸 수 있는 돈은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이 아직까지는 지출을 이어가고 있지만, 비용 압박이 계속 쌓이면 피로감은 결국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외식, 여행, 샤핑 등 선택적 소비가 고유가와 고물가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경제의 표면적 성장세는 아직 견조하다. 올해 1분기 실질 GDP는 연율 2.0% 성장해 지난해 4분기 0.5% 성장에서 반등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 수치가 미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수입 증가가 성장률을 끌어내렸고, 정부 지출 반등이 일부 성장률을 떠받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변동성이 큰 무역과 일부 항목을 제외하면 민간 내수는 여전히 견조했다. 1분기 민간 국내 최종수요는 연율 2.5% 증가했다. 기업투자는 지식재산과 AI 관련 지출을 중심으로 성장세를 보였고, 소비 지출도 계속 늘었다. 하지만 명목 GDP 성장률 5.6% 가운데 약 3.6%포인트가 물가 상승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은 미국 경제의 성장 구성이 점점 더 불균형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는 여전히 미국 경제의 핵심 버팀목이지만, 그 기반은 약해지고 있다. 보고서는 명목소득은 증가하고 있지만 높은 물가가 구매력을 잠식하면서 3월까지 최근 6개월 중 4개월 동안 실질 가처분소득이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소비가 크게 둔화되지 않은 것은 가계가 저축을 줄이며 지출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 자산은 또 다른 완충장치로 꼽히지만, 실제 소비 여력으로 전환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보고서는 미국 가계의 모기지 부채가 주택자산 가치의 25~30% 수준에 불과해 역사적으로 보면 상당한 주택 순자산이 쌓여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높은 금리로 인해 리파이낸싱이나 주택담보신용대출(HELOC)을 이용하려면 훨씬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주택 자산은 소비를 떠받치는 적극적 자금원이 아니라 ‘잠재적 안전판’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이다.
노동시장에 대해서는 ‘방어적 안정’이라는 표현이 제시됐다. US뱅크는 올해 말 실업률이 약 4.6%까지 완만하게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고용시장은 무너지고 있다기보다 ‘저채용·저해고 균형’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평가다. 기업들은 대규모 해고에 나서지는 않지만, 불확실성 속에서 신규 채용에도 적극적이지 않다.
인플레이션은 올해 미국 경제의 가장 까다로운 변수로 남아 있다. 보비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가격 상승과 관세 관련 상품가격 압력으로 단기 물가 압력이 다시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3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7% 급등했고, 전년 대비로는 3.5% 올라 3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CE도 전월 대비 0.3%, 전년 대비 3.2% 상승해 연준의 목표치인 2%를 여전히 웃돌았다.
보고서는 최근 물가 상승이 광범위한 인플레이션 반등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인플레이션의 기저 압력이 여전히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항공료 상승은 에너지 가격이 근원 물가로 전가되기 시작했다는 첫 신호로 해석됐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연준이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US뱅크는 근원 PCE 물가상승률이 올해 2분기 전년 대비 약 3.3% 수준에서 정점을 찍은 뒤, 2027년 초에는 2.6% 안팎으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상품가격 정상화, 주거비 둔화, 임금 상승률 완화가 물가를 점차 낮추겠지만, 그 과정은 느리고 일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연방준비제도(FRB·연준)은 당분간 기준금리 인하에 신중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연준이 현재 “신중한 인내”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성급한 완화보다 위험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연준이 올해 12월과 내년 6월 각각 0.25%포인트씩 두 차례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이는 인플레이션이 다시 뚜렷하게 둔화된다는 조건이 붙은 전망이다. 노동시장이 아직 안정적이고 장기 기대인플레이션도 연준 목표에 부합하는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만큼 연준은 경기부양보다 물가 신뢰 회복을 우선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US뱅크는 미국 경제가 당장 침체로 빠질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봤다. 보고서는 향후 12개월 내 경기침체 확률을 30%로 낮췄다. 최근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견조하고, 노동시장이 안정적이며, 중동발 에너지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가 일부 완화됐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위험요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장기화되거나, 가계 저축 여력이 더 약해지거나, 정책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미국 경제의 완만한 확장세는 다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특히 소비가 저축 감소와 신용 활용에 기대어 유지되는 구조라면, 고금리와 고물가가 동시에 이어질 때 충격 흡수 능력은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
보비노 수석이코노미스트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 경제는 아직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더 이상 넉넉한 완충장치에 기대어 달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성장은 이어지지만 속도는 느려지고, 소비는 버티지만 기반은 얇아지고 있다. 올해 미국 경제는 침체를 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비용 압박 속 정상화’의 시험대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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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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