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든 ‘블루칼라’ 근로자들
▶ 단순노동직이라 체력 달려 본인도 업주도 부담
지난 2000년 병원건물 관리직에서 안내 데스크로 자리를 옮긴 스티브 과다루페가 방문객에게 길 안내를 해주고 있다.
스티브 과다루페(68)는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다. 올해 68세인 그는 공군 인사처에서 사회인으로서의 첫 삽을 떴다. 거기서 쌓은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은행자료실로 자리를 옮긴 것은 1983년. 그러나 1980년대 말 일감이 말라붙자 건설 쪽으로 방향을 돌렸고 결국 마이애미 소재 뱁티스트 하스피틀 구내에 자리한 6층짜리 부속건물의 관리팀에 합류했다.
건물관리는 하루 종일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무거운 물건을 옮겨야하는 힘겨운 직업이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시간이 지나자 한계치를 벗어난 몸의 반란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가면 늘 다리가 쑤시고 아팠다.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대학에 다니는 막내아들 뒷바라지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생각다 못한 그는 건물 관리인에서 안내원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병원의 구석구석을 자신의 손바닥처럼 빤히 아는 그에게는 편하고 쉬운 일자리였다. 물론 보수는 건물관리직에 비해 적었으나 “80이 넘어서도 계속 다닐 수 있는 평생직장”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단순노동직(blue-collar jobs)은 체력소모가 심한 일이라 마냥 계속하기 어렵다. 게다가 몸으로 때워야 하는 업무의 성격상 업주들도 나이든 근로자들을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은퇴하기도 싫고, 하지도 못한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그동안 축적한 지식과 기술을 이용해 힘이 덜 드는 일자리로 갈아타는 것이 상책이다. 단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그중 한 가지 대안이 멘토십(mentorship), 다시 말해 후진양성의 조언자 역할을 맡는 것이다. 용접공, 기계공, 기타 기능 노동자들이 줄어드는 가운데, 도제 프로그램은 나이 들고 경험 많은 근로자들에게 힘이 덜 드는 일자리 기회를 제공한다.
클리브랜드 재단의 로버트 에카르드트 부사장은 “블루칼라 은퇴자들은 자기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멘토가 될 충분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수십 년간은 블루칼라 근로자들에게 힘겨운 시기였다. 미국의 굴뚝산업은 국제시장의 저경비 경쟁을 감당하지 못한 채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상당수의 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국내 공장들은 운영비가 적게 드는 해외로 속속 옮겨갔다.
눈부신 진화를 거듭한 테크놀로지도 단순노동직 종사자들을 일터에서 몰아내는데 손을 보탰다. 중장비 앞에서의 삽질처럼 첨단 기계 앞에서 그들의 기능은 부질없어 보였다.
직업이전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지역 사회와 기술 대학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기술 인력을 교육시키고 유지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왔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경영대학원인 와튼 스쿨의 인력관리 센터 소장 피터 카펠리는 “실제로 블루칼라 인력이 ‘대안 직업’을 갖도록 돕는 것이 더 쉽다”면서 “정부의 지원 역시 그런 방향에 맞추어져 있다”고 말한다. 일터에서 밀려난 근로자들을 위한 연방과 주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자금과 훈련 프로그램은 이들을 4년제 대학졸업장을 요구하지 않는 일자리로 재취업시키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뜻이다.
이같은 지원 시스템은 나이 든 단순직종 노동자들이 힘이 덜 드는 일자리를 구하려 할 때 귀중한 도움을 제공한다. 훈련 프로그램에 등록한 ‘나이든 학생’들은 힘겨운 육체노동에서 벗어나는데 필요한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취득하려 든다.
미네아폴리스 소재 던우디 기술대학 리치 와그너 총장은 전기공을 좋은 예로 꼽는다.
전기공은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무거운 장비와 전선을 끌고 다녀야 하는 고된 일이다.
이들이 나이가 들어 일을 계속하기 힘들면 전기 프로젝트 공사견적원 자격을 따러 던우디 기술대학을 찾는다. 와그너 총장은 “전직 전기공은 매우 훌륭한 견적원(estimator)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대안은 자영업이다. 일반적으로 대졸이상 학력의 근로자들이 50대 이후에 자영업에 뛰어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10%는 대학 졸업장이 없는 나이든 노동자들이다.
수입이 일정치 않다는 위험요인이 따라붙긴 해도 자영업의 큰 장점은 근무의 유연성이다.
조 아나니아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지금 피츠버그에서 오토바이 수리업을 한다. 청년시절 오토바이 레이싱과 수리를 즐기던 아나니아는 결혼 이후 21년간 노스웨스트 항공(지금의 델타 항공)의 기계공으로 착실하게 근무했다.
2005년 파업이 실패로 끝나자 직장복귀를 포기한 그는 어릴 적 꿈을 살려 빈티지 오토바이 수리업을 시작했다. 이제 50대 후반인 아나니아는 이 일을 오랫동안 할 계획이다. 그는 “내 자신의 보스가 된다는 것의 장점은 쉬고 싶을 때 쉬고, 힘들면 일을 조금 줄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50대나 60대 초반의 대학을 졸업한 월급쟁이들이 직장을 포기하고 새로운 커리어로 뛰어드는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교졸업 학력을 지닌 65세-69세 연령대 노인들의 경제활동 참여율 역시 크게 늘었다. 남성의 경우 1995년의 26.7%에서 지난해 30.3%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여성은 17.9%에서 24.2%로 증가했다.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 직장 생활을 연장하는 것은 아니다.
블루칼라 근로자였던 스터드 터켈은 최근호평을 받고 있는 ‘근로’(Working)라는 책에서 단순직노동자로서 자신의 생활이 힘겨웠음을 고백하면서도 ‘일’이 주는 품위(dignity)와 자부심(pride)을 누누이 강조한다.
그는 “내게 있어 일한다는 것은 일용할 빵과 함께 매일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 작업이었고 돈과 함께 타인의 인정을 추구하는 것이었으며 무기력(torpor)보다는 경이(astonishment)를 찾는 것이었다”며 “고된 노동으로 몸은 망가져도 무기력을 피하고 그런 가치를 계속 추구하는 것에 대해 할 얘기가 훨씬 많다”고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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